제작비 300억원이 들고 톱스타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태왕사신기' 제작에 참가한 할리우드 정상급 촬영감독이 피고인인 형사사건 재판부가 원활한 촬영을 돕기 위해 `선처'를 베풀어 눈길을 끌고 있다.
10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형사5부(이상훈 부장판사)는 대마를 대량 수입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된 외국인 촬영감독 M씨의 선고공판을 이달 초 열 예정이었으나 7월 중순으로 늦췄다.
통상 불구속 피고인의 경우 공판 개시 후 한달 안에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때문에 2개월 이상 재판을 미룬 결정은 이례적이다.
이는 재판부가 M씨의 `특수한' 신분과 상황을 고려한 데 따른 결과다.
M씨는 2002년부터 전세계에서 개봉돼 큰 인기를 모은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시리즈 1∼3편에서 특수효과 촬영의 책임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이 영화 3편은 2004년 아카데미상 시각효과상을 비롯해 11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2002년(1편)과 2003년(2편)에도 아카데미상 4개ㆍ2개 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
한류 스타 배용준이 주연을 맡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드라마 `모래시계'의 콤비 송지나ㆍ김종학씨가 각각 극본과 연출을 맡은 `대작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해외수출을 염두에 두고 `반지의 제왕' 스태프들이 참여해 촬영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M씨를 주축으로 한 할리우드 촬영팀은 드라마 전반의 핵심 요소인 컴퓨터그래픽과 미니어처 제작 등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대마초 흡연이 자유로운 해외에서 지내던 M씨가 국내에서 대마를 피우려고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 대마를 받았다가 적발돼 올 2월 인천지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불거졌다.
미국과 뉴질랜드 국적을 가진 M씨는 대마초 27.6g을 국제특송화물을 통해 전달받았다가 양이 많다는 이유로 마약류관리법상 형이 가장 무거운 `대마 밀수입' 혐의가 적용돼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입국관리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외국인은 국내에서 강제 퇴거하며 M씨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 것이다.
M씨는 벌금형의 대상이 아닌 혐의를 자인해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예상되며 형이 확정돼 추방될 경우 드라마 제작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결국 제작진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M씨도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후임자를 물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만 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재판부가 고심 끝에 일단 제작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상훈 부장판사는 "M씨가 혐의를 인정하고 있고 유통 목적이 아니라 흡연 목적인 점, 위법성 인식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해 제작진의 요청대로 선고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한류 열풍과 국익 등 드라마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자는 판단에서 이처럼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