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울농군 '흙에 살리라'딱딱한 아스팔트 바닥과 콘크리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공룡도시」 서울은 숨이 막힌다. 조그마한 자투리땅이라도 나오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여지 없이 파헤쳐져 이제 온전한 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다.
이런 서울의 도심 노른자위 땅에서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농토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강남의 요지에서 숱한 개발유혹에도 불구하고 10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가 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외길인생을 걷는 사람도 있다. 정부로부터 농업인 후계자로 선정된 사람도 서울시에만 66명에 달한다.
10대째 농사짓는 김대원씨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에서 청계산 방면으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10대째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업인 후계자 김대원(金大元·46·서초구 원지동·WWW.DAEWONLAND.NET)씨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金씨는 선조들이 이곳에 정착한 지난 1750년 이후 대대로 천수답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중학교 때부터 4H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농촌활동에 익숙해진 金씨는 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전옥답을 일구는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金씨는 공시지가로도 평당 50만원이 넘는 이 금싸라기 땅에서 70년부터 채소농사를 시작했고 74년부터는 부가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시작했다.
수입이 짭짤해 2,000평의 땅이 이젠 5,000평으로 늘었다. 金씨는 『농사 짓는 것보다 개발의 유혹을 떨쳐내는 게 더 힘들다』고 고충을 말했다.
허브농장의 꿈 이룬 조강희씨
송파구 장지동에서 허브농장을 하는 조강희(趙岡熙·44·허브다섯메 대표·WWW.HERB5.CO.KR)씨도 일찍부터 농장일을 하던 형의 일을 거들다 농사꾼으로 변모해 성공한 케이스다.
75년 성북구 월계동에 있는 농업계 고등학교인 인덕실고를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趙씨는 농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방송대학을 마치자 형이 농장을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해와 마지못해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다행히 적성에는 그런대로 맞았다. 이렇게 4년 정도 배우는 동안 자신의 농장을 가져보고 싶은 꿈이 생겨 독립을 하기로 했다.
장지동에 농지를 빌려 화분용 화초류 여러가지를 취급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4년 전 주위에서 『베란다에서 허브를 키운 후 만성두통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직접 책을 사다가 공부를 하다 보니 『바로 이거다』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외국에도 나가 꾸준히 정보를 수집했다. 예상은 맞아 떨어져 잘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장지동 농장 외에도 성남·분당까지 넓혀 이젠 농장규모가 6,500평으로 늘었고 취급품목도 화분뿐만 아니라 오일·방향제· 차·비누 등 허브에 관한 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사람구하기와 판매망 개척이 힘들었다』는 趙씨는 요즘 사은품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주유소에서 사은품 판매를 해본 결과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는 趙씨는 유통단계만 줄이면 허브시장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철수기자 CCSOH@SED.CO.KR
입력시간 2000/08/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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