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과거와는 달리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대화로 타협이 이뤄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노조가 요구하는 조건의 대부분을 수용 함으로써 `친 노적인 노동정책`을 펼친다는 비판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노동계의 기대 수준을 무리하게 높여 파업만 하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화 실감하는 노동정책=이번 화물연대와의 협상은 노무현 정부의 달라진 `노동정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과거에는 툭하면 불법파업으로 규정, 노동자를 강제로 구속하는 등 전형적인 힘에 의한 노동정책이 이뤄졌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성희 노동연구원 박사는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대화를 문제를 해결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춘투(春鬪) 등에도 정부가 대화와 타협에 의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그간의 노사관계가 `사용자 중심`으로 편향되게 전개되었으므로 잘못된 노사의 세력균형을 바로 잡으려면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실제 이번 파업에서 정부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도 14일 기자간담회에서 “ILO 등 국제기구에서 비판하는 불합리한 정책은 바로 잡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화물연대측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정부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파업만능주의 우려= 그러나 재계는 두산중공업ㆍ철도 파업에 이어 화물연대까지 정부가 노동계에 우호적인 색깔을 분명히 함에 따라 기대 수준이 한껏 높아진 노동자들이 올 춘투에 너나 할 것 없이 `배째라`는 식으로 파업에 나설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파업만 하면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는 인식이 노동계에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춘투에서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서로 들고 일어서면 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에는 국회에 계류중인 주 5일제 근무를 비롯해서 비정규직 보호방안, 외국인 고용허가, 공무원 노조 허용, 퇴직연금제 도입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하기 때문에 정부가 조금만이라도 반 노동적인 입장을 보이면 노동계가 바로 들고 일어설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올 춘투가 예년보다 비교적 조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사실상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대부분 들어주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전국적인 투쟁으로 몰고 갈 이슈가 아직은 없는 것 같다”며 “비정규직 문제와 주 5일제 등이 향후 춘투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과제= 화물연대 파업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주무부처를 선정하지 못하는 등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예견치 못한 파업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정부의 신속한 대응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노동전문가는 “선진국에서는 분야별로 협상전문가가 협상에 적극 참여해서 갈등을 조기에 조정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며 “정부의 노동 협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용호기자 chamgi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