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정계개편을 둘러싸고 ‘춘추전국’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통합신당 추진이 가시화되면서 범여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도 정치세력 불리기에 나서며 아직 ‘실체도 없는’ 신당 지분경쟁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시민사회단체 중에선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는 4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진보진영이 무능력한 집단으로 낙인 찍히고, 보수진영은 마치 대통령이 된 것 같은 분위기로 가고 있다”며 “대선국면에서 진보진영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미래구상’을 발족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외부 전문가나 국민의 지지를 받는 그룹이 제3의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후 여러 그룹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경선 등을 통해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범여권 + 제3의 원외세력’으로 통합신당 구도에서 시민단체인 원외세력이 구심점이 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 대표가 미래구상 출범은 범여권 정계개편의 일환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가치관이 맞으면 여야 인사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라고 하는 부분은 결국 민주당이 주창해온 제3지대 통합론이나 열린우리당의 헤쳐 모여식 통합신당론과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미래구상에는 범여권의 대권주자로 영입이 추진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박원순 변호사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도 참여제안이 전달된 상태다. 미래구상에는 학계ㆍ여성계ㆍ문화계ㆍ시민단체 진영의 진보성향 인사 100여명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에선 통합신당 추진을 둘러싼 내부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강봉균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일부 실용노선 의원들이 신당 추진의 최대 세력으로 꼽히는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에게 2선 퇴진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또 민주당은 신당통합수임기구 역할을 맡게 될 새 지도부 선임문제를 놓고 원내외 인사들의 대표 경선 구도 그리기에 돌입하는 조짐이다. 이에 따라 원외에선 장상 대표와 박상천 전 대표, 정균환 부대표, 박주선 전 의원 등이 차기 지도부 도전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원내에선 김효석 원내대표와 조순형 의원, 이낙연 의원 등의 경선참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범여권 빅뱅의 또 다른 한 축으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 진영은 성급한 정치세력화는 신당을 둘러싼 기득권 싸움으로 변질돼 정계개편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은 “일각에선 우리측 캠프도 고건 신당을 창당해 독자 정치세력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하는 데 이는 범여권이 기득권을 버리고 새 출발 하자는 취지에 어긋난다”며 “원래의 계획대로 오는 3~4월 ‘원탁회의’를 꾸려 범정치권이 신당을 출범시키는 대화의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