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환율 잡고 관리비용 줄이겠다지만…

■ 보유 외환 은행예탁 논란<br>IMF, 환란때 "유동화 불가능" 보유액서 제외 '악몽'<br>민각위탁도 위험 수반… 국민적 합의도출 선결과제

환란이 터지던 지난 97년.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화곳간(가용외환보유고) 규모를 놓고 IMF와 승강이를 벌였다. 한국측은 시중은행들에 빌려준 수십억달러를 보유액으로 산정했으나 IMF는 이를 “유동화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의미 없는 돈’으로 치부했다. 결국 정부는 1~2년에 걸쳐 이 돈을 회수했고 일부 은행은 자금압박으로 디폴트 위험에 처하는 쓰라린 경험을 맞보았다. 환란 발발 7년여.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를 넘어선 시점에서 은행 예탁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달러가 필요한 은행들에 보유액 일부를 맡겨놓으면 연간 5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관리비용 일부를 줄일 수 있는데다 신규 차입을 줄여 만성적인 달러 공급 과잉에 따른 환율하락 문제를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환란 전에는 달러 예탁이 신인도가 떨어져 돈을 못 빌리는 곳에 대한 구제 성격이었다면 이번에는 과다 보유에 따른 손실과 환율급락을 막기 위해 은행을 ‘임시창구’로 삼겠다는 점이 다르다. 이 같은 흐름은 외환정책의 기조변화와도 연계된다. 진동수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은 브리핑에서 “‘달러 유입 촉진, 유출 억제’의 기조를 재검토하겠다”며 정책전환을 천명했다. 언제까지 폐쇄적 정책에 억눌려 넘치는 달러를 두고만 볼 것이냐는 것이다. 이는 중장기 운용 방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환란 당시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악몽에 가위눌려 안전한 달러자산에만 매달려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중국은 외환보유액을 중국은행과 건설은행의 자본금으로 넣은 적이 있다”며 정책전환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을 통해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기도 한다. 우리도 은행에 예탁해 신항만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이나 첨단 자본재 수입이 필요한 기업에 대출,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데 이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것이다. 물론 당국자들은 이를 표면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최중경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한은과의 조율은 물론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며 “무엇보다 국민적 컨센서스가 도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환란이 언제인데 벌써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는 국민들의 반감(反感)이 해소되기 전에는 총대를 메기가 쉽지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한은도 이점 때문에 부정적 입장이다. 이광주 한은 국제국장은 “중앙은행이 외화대출을 해주는 것은 외화 공급이 부족한 경우에 하는 일”이라며 “은행의 해외차입은 외화증권을 자주 발행해 신인도를 쌓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과다 운용 비용을 막기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면서도 “외환보유는 국제시장에서 신뢰를 쌓기 위한 대외지급 준비자산이란 점에서 민간에 맡기는 것은 위험을 수반할 수 있어 과도한 정책전환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도 중장기 방향에서는 필요성을 인정한다. 한은도 최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일부 의원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보유액 일부를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곳에 대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당국과 큰 흐름에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은행예탁 문제는 “누가 언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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