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강한 경제를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취임 일성대로 지난 100일 동안 일본 경제를 장기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끌어내는 데 주력해 온 아베 정권에 대한 평가는 일단 '합격점'이다.
공격적인 돈 풀기로 집약되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엔화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침체된 일본 경제도 다시 꿈틀거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마침내 '잃어버린 20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움트기 시작했다.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하며 70%까지 돌파한 높은 지지율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순항이 앞으로도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취임 후 100일간의 '허니문(밀월)'기간이 끝난 지금부터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아베 정권은 진짜 시험대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의 궤도로 진입할 지, 1차 집권기(2006~2007년)에 이어 또 다시 '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안게 될 지 지금부터가 갈림길이다.
지난달 17일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내각 출범 직후인 지난해 12월(65%) 이후 3개월 연속으로 올라 72%를 기록했다. 지난 수 년 동안 일본 총리들이 내각 출범 직후부터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던 패턴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아베 총리의 자신감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2007년 1차 아베 내각 당시 급속도로 지지기반을 잃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1년 만에 도망치듯 총리직을 내놓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무엇보다도 '아베노믹스'가 가져 올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취임 전 달러당 70엔대에 머물던 엔화가치가 90엔대로 급락하고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30% 가까이 급등했다. 엔저 효과에 힘입어 수출시장에서 죽을 쑤던 대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날로 호전되고 있다.
지난 21일 아베노믹스를 전면 지지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취임하면서 물가 상승 기대감도 높아졌다. 일본은행이 지난 1일 발표한 분기별 소비자 신뢰 조사에서 물가가 1년 안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 응답은 74.2%를 기록,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1차 집권 당시의 실패를 바탕으로 키운 정치적 노련함과 리더십도 어필했다. 극우성향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의식해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평화헌법 개헌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가 하면, 민주당 정권이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를 밀어붙이는 등 '위기내각'에 걸맞는 결단력과 유연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안정 궤도로 진입했다고 보기엔 시기 상조다. 오히려 '기대감'이 떠받쳐 온 높은 지지율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지금부터다.
당장 아베 총리의 인기의 최대 요인인 엔저는 취임 100일을 즈음해 벽에 부딪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의 엔저 현상은 일본은행의 물가상승률 2% 목표 달성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지만, 실제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지 않을 경우 기대감만으로 엔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달러당 96엔까지 하락한 엔화가치는 2일 한때 92엔대로 올라섰다. 일본은행 출신인 JP 모건의 도쿄 소재 아다치 마사미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 총재가 1년 안에 1% 인플레를 유발하지 못할 경우 아베노믹스가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핵심 정책인 '2년 내 디플레 탈출'에 대해 정권 심장부에서도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일 중의원에 출석해 "2년 안에 2% 인플레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실토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1일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를 유도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가 물가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임금상승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아베노믹스'가 오히려 가계부담을 키울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정정책에 대한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 고령대국 일본에서 복지예산을 줄이고 방위와 토목공사비를 늘리는 데 대한 불만과 재정악화에 따른 국가채무 리스크는 정권 출범 당시부터 아베노믹스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다. 구로다 총재도 지난 28일 "과다 채무는 비정상적이고 지탱하지 못한다"고 이례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국가 채무에 대한 공개 언급이 금기시돼 있다. 자칫 국채 투매 사태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장기적인 성장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구조개혁 면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생산성 향상이나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통화ㆍ재정 정책에 의지한 지금의 아베노믹스 효과는 일시적인 '거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과제들을 안은 아베 정권은 오는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장기 존립을 좌우할 첫 기로에 서게 된다. 야당이 지리멸렬하게 분열된 지금으로서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앞으로 남은 3개월 여 동안 어떤 변수가 발목을 잡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난 2007년 참의원 선거 패배는 지지율을 잃은 1차 아베 내각 붕괴의 결정타가 됐다.
또 참의원 선거에 승리할 경우 불거지게 될 개헌 논란과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 아베 총리의 극우 색채가 정권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지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아베 정권에 대한 진짜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