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속에 문학의 정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그 흥분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45년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온 김주연(70ㆍ사진) 한국문학번역원장이 처음으로 아동문학 관련 평론집을 냈다. 제목은 '그림책&문학읽기'. 문학계에서는 노(老)학자가 아동문학 관련 평론집을 낸 데 대해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 원장은 "45년 만의 외도가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숲 속으로 놀러간 여자아이와 동물들의 만남에서 릴케의 실존주의를 꺼내고 영문도 모르고 집에 혼자 남겨진 남자아이의 불안에서 표현주의를 설명한다. 평론 대상이 된 책 모두가 시중에 나와 있는 어린이 그림책들이다. 예컨대 그가 정의하는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문학은 '100만번 산 고양이'에서처럼 백만번 되풀이돼온 일상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랑 같이 놀자'에서처럼 인간이 써먹으려고 하면 달아나고 존재 그 자체로 놓아두면 다가오는 것입니다.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에서처럼 지금까지의 해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것, 그러니까 치마 입기를 거부하고 바지를 입는 것입니다." 김 원장은 또 문학이란 '신통방통 제제벨'에서처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라거나 '오스카만 야단맞아'에서처럼 한 개인 속에 있는 양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제랄다와 거인'에서처럼 보듬거나 감화시키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아동문학은 평소 친숙한 편이 아니었다는 김 원장은 "아이 엄마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에 대해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몇 줄에 불과한 그림책의 글들이 문학 사조를 간추린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라웠다"고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일각에서 요즘 문학평론이 현학적이고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문학평론이 다루는 범주가 좀 더 넓어지고 쉬워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주고 싶어 시간을 쪼개 책을 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오랫동안 내가 해온 독일문학의 본질은 사실 낭만주의인데 그림책 속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한 것은 나로서는 작은 개벽이었다"며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