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갈 길이 멀다. 중국인들이 한국 온라인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구입하려다 포기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서둘러 규제를 풀기로 했지만 신뢰할 만한 본인인증 결제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30만원 미만 결제용은 금융당국의 인증을 받은 민간 제품이 몇 개 있지만 30만원 이상 결제용은 공인인증서뿐이다. 30만원 미만 결제용도 신용카드사와 결제서비스 업체의 비협조로 활용도가 낮다. 정부(옛 정보통신부) 주도로 개발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화가 9년째 이어지면서 다양한 본인인증 결제서비스 기술이 경쟁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다.
이런 빈틈을 페이팔, 구글 월렛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 받은 외국계 결제서비스가 내버려둘 리 없다.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제 폐지가 낙후된 국내 전자상거래 및 전자금융거래 생태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정책과 맞물리지 않으면 안방만 내주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자생력을 키우는 출발점은 공인인증서를 포함한 모든 본인인증 결제방식들이 경쟁을 통해 혁신할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을 만들고 기업에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규제완화로 신용카드 번호와 e메일·배송지 주소 정도만 입력하면 끝나는 간편 본인확인 결제시스템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환상도 경계해야 한다. 국민 대부분의 주민등록·신용카드·휴대폰 번호 등이 유출된 만큼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ISP안심결제나 안심클릭, 휴대폰 인증 등 추가 본인확인 절차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과속하거나 건수 올리기 식으로 접근하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