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싱가포르:2/경제계획 수립 노사정 공동참여(경제를 살리자)

◎공무원 “엄청난 고임”… 부정발각땐 전재산 동결·압수/자본자유화·세율낮아 기업하기 “으뜸”싱가포르는 지난 40여년간 네차례나 경제계획을 수립, 시행했다. 말레이시아연방 시절인 60년 제조업을 육성키 위한 1차계획, 80년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2차계획에 이어 86년 경제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3차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 91년 수립된 4차 계획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59년 집권, 30년 이상 최고권력을 누려온 이광요수상이 물러나고 오작동수상이 취임하면서 「최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수립한 경제계획이다. 이 계획은 수립과정의 치밀함 때문에 외국에서 더 주목받았다. 이 계획은 더이상 저비용을 무기로 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보화를 성장의 화두로 삼아 30∼40년내에 세계 최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먼저 지난 89년 12월 노·사·정 전문가들로 경제계획위원회가 구성됐다. 8개 소위원회에서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6백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했고 환경부문에만 1백37명의 최고경영자가 참석, 다채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공청회만도 1백회 이상 열렸고 13개 소부문에 대한 토의가 별도로 진행됐다. 논의과정에서 전문기술인력의 부족,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상실 가능성, 주변국의 급성장에 따른 경쟁 심화, 동남아지역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 등 이들의 고민이 거의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정부기관이 독자적으로 마련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밀어붙이는 경제계획만 보아온 우리에겐 무척 색다른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싱가포르는 노·사·정 전체가 너나없이 폭넓게 토의에 참석, 보다 효율적으로 공통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성장전략을 도출한 것이다. 물론 계획의 이행추이는 매년 재검토되며 이 과정에서 외국의 관계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이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제계획 보고서에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전략적 방향, 기술도입 방안,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 등이 실렸다. 30∼40년 후의 국내외 경제환경을 설정, 그에 대처하는 비전과 8가지 전략목표를 제시하고 19가지의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마련했다. 노·사·정이 하나되어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보여준 중립적 자세는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 경쟁력의 95%는 정부부문에서 나온다는게 경제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선 싱가포르 공무원의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보면 엄청난 급여수준에 놀라게된다. 일부 고위공무원은 우리 돈으로 7억∼8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싱가포르 민간기업의 최고액 연봉자만 골라 평균을 낸 뒤 그의 70% 수준에서 급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능한 인재가 정부조직으로 몰려들고 있다. 급여수준만큼 많은 일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행정부는 「개방되고 투명하며 기강이 있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창의적인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공무원 부정에 대한 처벌은 잘 알려진 대로 엄격하다. 재직 중 부정부패로 축재를 하다 발각되면 모든 재산을 반환해야 한다. 60년에 이미 부패방지법이 제정됐을 정도다. 그것도 모자라 89년엔 비리행위자의 자산을 동결하고 압수하는 자산압수법안까지 만들어졌다. 싱가포르에서 부처이기주의나 부처간 갈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무부 대사를 역임한 인사가 무역개발청장으로, 외무부 아세안국장이 민간기업 자문관으로 파견돼 정부기관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파한다. 인적 교류가 활발한 만큼 특정 부처의 이익만 챙길 이유가 없다. 특히 주요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고위공무원일수록 여러 부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공무원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공사다. 주택개발청, 경제개발청, 항만청, 공항관리청, 통화청(중앙은행), 관광진흥청 등 다양한 형태의 공사는 싱가포르 성장의 견인차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조직이어야 할 이들 조직이 공사로 독립돼 있는 것은 「탄력성」을 추구하기 때문. 정부기관이 엄격한 규정에 따라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반면 공사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제도를 시의 적절하게 도입, 수행할 수 있다는게 그들의 생각이다. 경제개발, 사회간접자본 건설, 공공주택 및 도시재개발, 관광진흥, 금융, 가족계획, 스포츠진흥, 교육까지 공사가 떠맡고 있다. 생산성, 효율성, 수익성, 합목적성 등 네가지 기준으로 이들 공사는 늘 평가받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컴퓨터청(81년), 과학기술청(91년), 표준화생산성청(95년)까지 만들어졌다. 정부가 흑자재정을 고수하고 있지만 실제 지출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국가 주요 기간시설을 관리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공사들이 수익의 대부분을 교육, 기간산업, 의료시설 등에 재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현상은 정부 부처간, 공사와 정부간, 정부와 기업간의 협조분위기다.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대명제 아래 필요한 정보는 철저히 공유하고 유관기관들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눈다. 기업에 대한 행정지도는 대단히 공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싱가포르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고 국내기업이 하청사업을 담당하는 성장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대외차입과 일부 대기업에 대한 집중지원을 축으로 추진돼온 한국식 불균형성장 전략과 대비된다. 싱가포르는 78년 외환 및 자본거래 제한을 철폐한 이후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최근 고위경영자 6백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73%가 싱가포르를 아시아 진출을 위한 지역본부로 선택했다고 한다. 편리한 영업환경, 발달된 사회간접자본, 정부 지원, 동남아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 등이 그들의 선택이유다. 소득보다 소비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고 직접세보다 간접세에 무게를 두는 점도 싱가포르 경제제도의 또다른 특성 중 하나다. 소득세율을 높일 경우 기업인의 투자의욕을 감퇴시킨다며 고소득자의 세율을 최고 28%수준으로 낮추고 법인세율도 대부분 선진국의 40%보다 훨씬 낮은 26%로 정해놓았다. 조세정책부터 기업하기에 좋도록 만들어놓은 나라인 셈이다.<싱가포르=손동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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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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