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승자 없는 대형마트 반값 전쟁… 관치경제 상처는 컸다

코드 맞추기 대폭 할인에도 고객몰이 못하고 실적 악화<br>정부 유통질서 과도한 개입 납품업자·소비자까지 피해<br>의무휴일 강화까지 겹쳐 "앞으로가 더 걱정"

3월 이마트 정육코너에서 소비자들이 반값 상품으로 나온 한우 곰거리를 살펴보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3월 내내 경쟁적으로 반값 식품 행사를 벌였지만 고객들의 반응이 크지 않아 오히려 전체 매출이 하락했다. /사진제공=이마트


대형 유통업체들이 박근혜 정부의 역점 과제인 물가안정 정책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반값 전쟁'으로 부를 정도로 대대적인 식품할인 행사를 열었지만 고객몰이 효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전체 매출이 악화되는 역풍만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불황과 규제강화로 영업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정부 눈치보기식 할인행사까지 무리하게 진행한 탓에 대형마트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ㆍ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은 지난해부터 지속돼온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 들어 일제히 할인행사를 늘렸다. 특히 마트발 할인경쟁은 지난 3월 정점에 달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의무휴업의 여파까지 겹쳐 지난 1년여간 마이너스 성장세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2월 말 공식 출범한 현 정부가 서민고통 완화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생활물가부터 잡겠다고 나서자 각 업체들은 서둘러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겠다며 먹거리를 대폭 할인된 가격에 내놓았다. 특히 3월 초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형마트 3사 고위임원들을 소집해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열었기에 업계가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이들의 할인경쟁 속에서 '반값 돼지고기'에다 '반값 한우'가 등장했고 이어 '반값 참치''반값 광어''반값 전복'까지 줄줄이 판촉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창립기념 또는 15년 전 가격, 심지어 엔저할인 등의 명목으로 식품 할인이 진행됐다.

하지만 각 업체가 3월 실적을 집계한 결과 치열했던 반값식품 전쟁은 실적 개선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적부진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ㆍ이마트 등 대형마트 2개사의 3월 전체 매출액은 전년동월 대비 4.4% 감소하며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잇단 반값식품 행사 속에서 식품 부문의 매출악화가 두드러지는 예상 외의 결과를 낳았다.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식품이 3월 전체 매출 감소세의 2배 수준인 8.2%나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반값 먹거리 전쟁은 고객들을 매장으로 끌어모으는 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3월 대형마트의 구매건수 증가율은 전년동월 대비 4.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전월의 -2.8%보다 더욱 악화됐다. 다시 말해 각 업체가 매주 전단을 발행할 때마다 미끼상품 역할을 할 반값식품을 내세웠지만 집객 기여도가 낮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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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3월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했던 식품할인 행사를 최근 들어 많이 줄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할인행사가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 악화에 그친 게 아니냐는 판단도 나온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반값할인 행사에도 매출부진이 계속되자 관련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날부터 발효된 개정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앞으로 영업규제가 한층 강화되기 때문이다.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정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들은 점차적으로 휴무일을 주중 월 2회에서 일요일 등 공휴일 월 2회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로 인해 대형마트의 실적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등의 시대 흐름이 있다 보니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대형마트의 지속되는 매출감소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가령 50% 할인을 하면 할인폭에 대해 납품업체와 대형마트가 절반씩 부담한다"며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생산된 물량을 일정 수준 이상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행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나 유통업체나 피차 제살을 깎아 먹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웬만한 가격인하 행사에도 소비자들은 가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쉽사리 구매에 나서지 않는다"며 "이 출혈경쟁에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승창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위적인 가격할인 유도, 의무휴업일 강화 등 유통질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유통업체는 물론 농민 등 납품업자ㆍ소비자에게까지 직간접적 피해를 준다"며 "특히 농축산물을 납품하는 영세 생산자, 납품업자들의 경우 과도한 할인행사 참여로 이윤이 줄고 납품일수 축소로 재고를 떠안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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