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주미대사는 경력 관리직?

전용호기자 <정치부>

“미국 사회와 미국 내 지식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고양시킬 수 있는 ‘빅 카드’를 모색해왔고 이를 발표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6일 출입기자와의 만찬 간담회에서 의기양양하게 주미대사 후임에 대한 인선 내용을 밝혔다. 그날 밤 기자들은 비상이 걸렸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선임됐다는 사실을 파악, 긴급 타전했다. 김 비서실장의 발언대로 이번 인선은 흥행면에 있어서 기대 이상의 ‘대박’이었다. 인선 과정을 알기 위해 기자들이 중앙일보 기자를 상대로 취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제대로 된 인선이다” “말도 안 된다”며 여론도 크게 엇갈렸다. 하지만 이번 인선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그레망’ 절차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선 내용을 흘리는(?) 김 비서실장의 가벼운 처신부터가 문제였다. 이는 외교적인 관례를 벗어나는 행동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청와대와 홍 회장측이 모두 주미대사직을 ‘경력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 회장은 정부에 국제연합(UN) 사무총장직 선임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고 청와대측은 이를 위한 전 단계로 주미대사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오는 2006년 말에 끝나는 UN 사무총장직에 홍 회장이 선임되도록 추진하겠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보면 이 같은 시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97년 대선에서 홍 회장이 보여줬던 행동과 탈세 문제 등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주미 대사라는 직함이 특정인의 경력이나 관리하기 위한 한가한 자리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 주한미군 문제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현안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더 웃기는 대목은 여권 내의 내로라하는 실세들이 서로 자신이 홍 회장을 추천했다고 말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홍 회장이 대사로 선임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를 ‘힘센’ 언론사의 회장으로 보지 말고 정부의 한 관료로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아무런 외교적 검증도 받지 않은 사람을 “UN 사무총장 후보로 추진하겠다”는 청와대 직원들의 ‘입단속’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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