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인권침해논란… 시행까진 시간 걸릴 듯

■ 상장사 임원 범죄전력 공개<br>투자자 보호 차원으로 선진국은 대부분 도입


정부가 상장사 임원과 대주주의 범죄전력 의무 공시를 추진하는 것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주가조작이나 횡령ㆍ배임 등 상장사 임원이나 대주주의 범죄행위는 곧바로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특히 과거에는 범죄와 연루된 기업이 주로 코스닥시장에 있었지만 최근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기업에서도 자주 발생하면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임원 연봉 공개에 이어 범죄전력 공개까지 추진하는 데 대해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정부도 인권침해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어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증시 선진국은 대부분 도입=지난해 금융감독 당국이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보한 사건은 180건에 이른다. 국내 상장사가 1,771개사(5월2일 기준)라는 점을 감안할 때 10곳 가운데 1곳이 지난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셈이다.

특히 횡령이나 배임 등 범죄는 과거 중소기업에 집중된 데 반해 최근에는 대기업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횡령ㆍ배임 사실을 공시한 유가증권시장의 대기업은 모두 9개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세조종이나 허위정보 유포 등 주가조작 사건은 이미 국내 증시에서 일반화된 지 오래"라며 "최근 들어 횡령ㆍ배임 등 죄질 나쁜 사건이 대기업에서도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중소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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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투자자 보호를 위해 범죄 전력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미국과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 홍콩과 싱가포르 등도 상장사 임원의 전과 기록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칙에 따라 집행임원과 대주주 등 이사회 구성원이 증권거래법을 위반하면 수시공시로 투자자에게 알린다. 이후 연간보고서에서는 전체 임원 등의 전과 사실을 추가로 공개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이사와 대주주ㆍ집행임원의 전과 사실을 법정 공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횡령배임의 경우 재범률이 높아 투자한 상장사에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이 있는지가 투자 판단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현재 OECD 회원국에서 임원진의 횡령배임이나 주가조작 등 전력을 법정 공시로 의무화하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현재도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으로 경영진의 범죄사실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는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의무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유명무실하다. 더욱이 범죄 전력이 있는 경영진이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투자자가 해당 사실을 알기는 100% 불가능하다.

◇인권침해 논란…시행까지는 시간 걸릴 듯=상장사 임원의 범죄전력 공개가 제도로 도입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없지 않다. 우선 거론되는 부분이 인권 문제. 프라이버시를 넘어 인권침해 논란까지 일 수 있어 실제 상장회사 임원의 범죄전력 공시 의무화가 도입될 경우 잡음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도 임원 연봉에 범죄전력 사실마저 공개할 경우 당사자 개인은 물론 회사 경영 측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눈치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취지는 좋으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날 수 있다"며 "특히 해당 임원의 경우 한 번의 실수가 평생 따라오는 낙인 효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도 작게는 공시부담 증가로, 크게는 회사 평판 추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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