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일본은 미국·중국과 함께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이지만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온실가스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기 수십 년 앞서 저탄소 정책을 추진해 화석에너지 비중을 낮추는 등 대비를 했기 때문이다. 저탄소 정책을 뒤늦게 추진해 기술력과 준비가 부족하면서도 기후협약이나 온실가스 문제에는 앞장서면서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EU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1990년 대비 19.3% 줄었다. 유럽환경청(EEA)은 예고된 정책들이 차질없이 시행될 경우 오는 2020년에는 감축 비율이 24%에 이르러 당초 목표였던 20%를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올 10월에는 아예 목표를 높여 잡아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40% 이상 줄이기로 했다.
EU의 이런 자신감은 블록을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이 1990년대부터 화석에너지 의존도를 크게 낮춘 덕분이다. 프랑스는 원자력에너지 비중이 75%를 넘는 '원전 왕국'이며 독일은 1990년 3.1%였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올해 27% 이상으로 9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집계하는 이산화탄소 원단위 지표(국내총생산 1,000달러당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톤수)를 보면 유럽은 2011년 기준 평균 0.27톤으로 한국(0.62톤)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EU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회복이 더디면서 에너지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탄소배출권 공급이 수요를 앞질러 지난해 말 현재 초과공급량이 21억톤에 달한다.
일본은 1979년 에너지 보존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06년 신국가에너지전략 등을 일찌감치 수립하며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독려해왔다. 이로 인해 일본의 2011년 기준 탄소 원단위 지표는 0.26톤으로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원(IFRI)은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유 수입을 금지당한 경험 때문에 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마자 대체에너지 구상과 기업·가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기 계획에 매진했다"면서 "이는 일본 기업들의 에너지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국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소극적이다. 일본은 연장된 교토의정서 체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도쿄와 사이타마 두 도시에서만 실시하고 있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EU와 유럽에 비해 출발이 늦은 한국 기업들이 저탄소 기술에서 경쟁력이 크게 뒤지는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규제를 밀어붙이고 기업에 적응을 요구하기보다는 기술투자가 선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부가 정책적 유연함을 발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