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영원하다?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현상(phenomenon)”이라는 한 외국학자 주장의 근거는 짧은 시간 이민으로 형성된 미국이란 특이한 체제의 정체성이 그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같은 견해의 바닥에는 전혀 다른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가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이’(驚異)의 심리가 깔려 있기도 하다. 그 힘의 원천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중 하나가 미국 사회가 태생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다져온 사회 계약적 성격이다. 완전히 다른 피부 빛과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체제 유지의 방법은 혈연ㆍ지연을 바탕으로 한 국가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근간을 이뤄온 것이 바로 사회 구성원간 약속과 원칙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합리적 제도는 필요 조건이 됐다. 국가 통치와 관리의 ‘발군’(拔群)의 제도 효율성이 국가 경쟁력과 연결되며 미국은 마침내 세계 지배국의 영광을 쟁취했다. 이 같은 점은 그러나 사회 계약, 약속과 원칙이 깨질 때 오히려 자연 발생적 국가들에 비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태생적 문제로 연결된다. 일단 그런 일이 발생하면 혈연ㆍ지연 위주의 국가보다 결속력은 겉잡을 수 없이 떨어질 수 있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이번 뉴올리언스 대재앙은 바로 그런 경우를 보여 준 상징적 사건이다. 미국이란 체제의 우월성은 강력한 법과 제도 하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돌아가지만 그 토대가 무너져 내릴 때 위험은 바로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다. 미국의 숨겨진 고민은 바로 그 같은 문제라도 언제라도 예기치 않게 돌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 내 인종 갈등은 이런 점에서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근원적 문제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오래 살면 경상도 사람이 될 수 있는 한국 지역 정서와는 문제의 본질이 다름이다. 미국 사회 향후 방향성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미국내 인구 구조의 변화다. 당장 가구당 자녀수가 1~2명을 넘지 않는 백인 사회에 비해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보통 3~4명을 넘는다. 조혼 풍습으로 흑인 중에는 30대 할머니들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구조는 필연적으로 미국 내 정치 경제 지형도에 엄청난 판도 변화를 낳을 게 분명하다. 또 이슬람과 중국의 팽창과 함께 전세계적으로도 문화 인류학적 대변혁을 예고하기도 한다. 미국이 처한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네오콘을 필두로 미국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워싱턴의 지배 세력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아마도 이 부분일 터다. 그만큼 백인 보수층들에겐 ‘뜨거운 감자중의 감자’의 문제란 얘기다. ▦대내적으로 인종 갈등이 이처럼 심각한 ‘시한 폭탄’의 문제라면 국가 운영의 장기 비전과 관련 대외적으로 가장 신경을 쓰는 미국의 전략적 이슈는 단연 에너지 문제다. 세계 지배 전략 가운데 에너지 확보를 가장 중요한 대외 정책으로 앞세우는 미국에게 중동은 늘 제 1 전략 요충지의 위치에 있었다. 이라크가 그중 하나다. 이런 과정에서 정작 미국내 석유 산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투자 감소 등 상대적으로 관심의 눈길이 멀어진 측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뉴올리언스 사태를 그 같은 상황에 대한 환기의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90년대 미국의 신경제 열풍 과정에서 등안시 했던 구경제, 특히 에너지 부문의 ‘복수’가 이번 사태 바닥에 깔린 의미라는 일부의 주장은 이런 면에서 매우 흥미롭게 들린다. 뉴올리언스 대재앙은 위에서 말한 2가지 사안 즉, 인종과 에너지 문제가 맞물려 있다는 데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인종갈등은 물론 에너지 문제가 미국의 대외적 뿐만 아니라 대내적 요인으로도 얼마든지 총체적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향후 최소 1백년은 너끈히 영화를 누릴 것으로 워싱턴이 희망하는 ‘제국’ 미국의 영광.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하기엔 지금 미국이 처한 문제들이 결코 간단치 않다. ‘카트리나’라는 매력적 이름의 태풍의 여신(女神)이 그걸 하루 밤 사이 싸늘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