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북한 내 주요 조직의 인물을 총동원해 일본 납치자 피해 문제를 전면 조사한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납치자 문제 해결에 대한 성의를 최대한 표시함과 동시에 북일 관계 강화를 통한 대남 및 대중 압박용으로 풀이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일 "우리 공화국은 7월4일부터 특별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모든 일본인에 관한 포괄적 조사를 개시하게 된다"며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로부터 모든 기관을 조사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해당 기관 및 관계자를 조사사업에 동원할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 받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본은 김정은 국방위원장 직할조직이 조사를 맡아야 한다는 그동안의 요구가 수용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를 열어 일본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가해온 경제 제재 중 인도적 목적의 북한 선박 일본 입항 금지, 양국 간 인적 왕래 제한, 북한에 한해 특별히 책정된 송금 보고 의무 등을 해제하기로 했다. 북일관계 진전에 따라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와 관련해 다음달 초 외무상 회담을 추진한다는 보도(일본 산케이신문)도 나온다.
북측은 서대하 국방위원회 안전 담당 참사 겸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김명철 국가안전보위부 참사와 박영식 인민보안부 국장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조사위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서 부부장은 2010년 4월 우리의 준장에 해당하는 군 소장으로 승진한 인물이며 김 참사는 지난해 2월 군 소장에 오른 인물이다. 박영식 국장은 우리의 소장 격인 군 중장으로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에 선출되는 등 북한 내에서 입지가 탄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통신은 "지부 책임자는 각 도·시·군 안전보위부 부부장들"이라며 "조사 진행 정형과 결과에 대해서는 분과별로 종합해 '특별조사위' 지휘부에 제기하도록 하며 '특별조사위'는 그 정형을 일본 측에 수시로 통보하고 호상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책을 세운다"고 밝혔다.
북한이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를 비롯해 남측의 국가정보원과 경찰에 각각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까지 동원, 사실상 전면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북측은 또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일본 측 인사의 조사 참여도 이번에는 허락했다. 통신은 "조사는 어느 한 대상 분야만 우선시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동시병행적으로 진행한다"며 "필요한 대상에 대한 조사를 심화시키기 위해 일본 측 관계자와의 면담, 일본 측 해당 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서와 정보 공유, 일본 측 관계장소에 대한 현지답사도 진행한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1차 조사 결과가 올 여름 말 또는 가을 초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납북자 최종 조사 결과를 "1년 이내에 북한이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다음달 초 초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 각료회의에 맞춰 리수용 북한 외무상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의 회담을 모색하는 등 납치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이번에 북한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납치자 문제 조사를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쪽 다 서로 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근 한중 관계 강화 등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은 2000년대 두 차례의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납치자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이번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는 평가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납치자 문제가 한미일 3각 대북공조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인도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입장 표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인도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북일 간 합의를 정부 차원에서 왈가왈부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가 한미일 국제 공조의 틀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