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어나라 건설코리아] 1-7.고부가 기술집약,싱가포르 복합화전

“설계시공 동시에...하루하루가 戰時” 기자신분을 밝히셔도 안됩니다. 관계자외의 현장출입은 금지돼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 도착하기 전 삼엄한 검문을 받아야 했다.`세련된 도시국가`라는 싱가포르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일순간 사라졌다.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이 있는 주롱섬 입구 검문소 앞에서 경찰이 자재를 실은 차량까지 일일이 검사한다. 뙤약볕에서 검은 얼굴빛의 동남아 각국 노동자들과 섞여 기다리기를 한시간 반, 겨우 통과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9.11 테러직후보다 경비가 완화된 편이라는 게 동행한 삼성건설 직원의 설명이다.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이 있는 주롱섬은 기간산업시설이 밀집한 싱가포르 산업의 심장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규모 정제시설, 화학약품 공장들은 싱가포르가 단순한 관광도시라는 인상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BP, 엑손모바일, 셸과 같은 세계 유수 다국적 회사의 공장들과 대규모 선박수선부두등 산업시설이 바다를 매립해 만든 주롱섬 위에 늘어서 있었다. 이 가운데 세라야 복합화력발전소는 삼성-지멘스 컨소시엄이 1999년 수주,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공사는 370MW급 복합화력 발전기 두 기를 기존 발전소에 추가로 건립하는 것. 복합화력 발전소란 수력과 화력 모두 이용 가능한 발전 시스템으로 기존 발전기보다 한단계 앞선 설비다. 공사 금액만으로는 5,700만 달러. 사실 규모나 금액면에서 초대형 공사는 아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한국 건설사들의 실적이 토목공사가 주를 이뤘던 반면 고부가가치 산업인 플랜트건설은 드물었다. 세라야 발전소 시공은 플랜트 공사로서는 시금석인 셈. 삼성 싱가포르지사 신용섭 영업부장은 “독일 지멘스와 컨소시엄을 구성, 싱가포르, 일본 업체 등을 제치고 공사수주를 따냈다“며 “세계적인 플랜트 회사인 지멘스가 한국기업을 파트너로 삼은 것은 선진국시장에서도 한국 건설사의 기술력을 인정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세라야 발전소는 EPC(engenieering procument construction) 즉, 설계ㆍ자재구매ㆍ시공까지 책임지는 턴키방식으로 수주한 프로젝트. 기존에는 C부문인 건설부분만 수주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부가가치 측면에서 턴키방식에 훨씬 뒤떨어 진다. 그 대신 수주한 건설사의 책임과 부담은 커진다. 고부가가치를 보장하는 대신, 수주회사의 책임은 늘어나는 방식. 그만큼 현장에서의 압박감과 긴장감은 높을 수 밖에 없다. 공기가 하루라도 연장되면 높은 위약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 7월 중순, 여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방문한 현장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2002년 11월 잡혀있던 공기를 9개월이나 단축, 지난 2월에 사실상 공사는 끝나고 시운전, 최종점검, 클레임자료 준비 등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조재호 현장소장은 “패스트 트래킹(fast tracking) 기법으로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패스트 트래킹이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공사진행기법. 조소장은 “그때 그때 나오는 설계에 따라 공사가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예측불허의 전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공기가 줄어든 만큼 현장 엔니지어들와 노동자들의 땀은 늘어나는 게 당연지사. 현지 엔지니어들은 공사가 시작된 이래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다고 전했다. 덕분에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고 이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싱가포르 발주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5개 국영 발전회사 중 하나인 파워세라야(Power Seraya)측은 원래 촉박했던 공기보다 더 빨리 끝낸 지멘스와 삼성 컨소시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외에 싱가포르 건설의 힘든 점은 까다로운 감리. 특히 안전관리에 대한 각종 규제가 많아 국내 기준에 익숙한 한국건설사들은 더 신경을 쓴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모기 한 마리가 현장에서 발견되면 5,000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고 두 번 발견되면 공사중단 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모기에 물리면 치사율이 높기 때문이다. 세라야 현장에서는 비가 오면 웅덩이의 물을 퍼내는 게 공사진행보다 중요한 일이 될 정도였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삼성의 현장 엔지니어들은 “싱가포르에서 턴키방식의 플랜트 공사는 첫 경험이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며 “다시 한번 같은 방식으로 플랜트 공사를 진행한다면 공기를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싱가폴 건설시장 발주규모] 바다매립등 인프라 확충에 年100억弗 `대기` 싱가포르 건설시장은 전 세계 건설업체에 문호가 개방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설회사의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시공능력에 따라 낙찰 여부가 결정된다. 싱가포르 건설청(BCA)은 오히려 외국의 1군 건설업체들이 장애 없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BCA는 최근 건설사 등급 제도를 개편했다. 주요 골자는 규모가 작거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건설사에 불리한 등급제를 도입한 것. 정부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등급 요건을 ▲3년간 정부공사실적 6,000만 S$(싱가포르 달러) ▲자본금 1,200만 S$ 등으로 한층 강화했다. 건설산업청(BCA)의 예나 다스 사무관은 “싱가포르 건설시장은 외국 건설회사에 열려있다”며 “중요한 건 국적이 아니라 시공능력과 입찰금액이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입찰 과정이 서류상으로 진행돼 투명하고 공정한 것도 싱가포르 건설시장의 특징 으로 꼽힌다. 쌍용건설 싱가포르 지사의 한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하면서 관리를 만난 일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가 한국 건설사에게 중요한 시장이 된 것은 90년대 이후. 91년부터 2002년 7월까지 국내 기업들은 공사계약금액면에서 86억US$로 리비아(52억US$)ㆍ인도(49US$)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누계액으로 계산하면 사우디 리비아에 이어 3위다. 그러나 최근들어 여건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타이세이(Taisei), 필립홀츠만(Philip Holzman),ABB 그룹 등과 같은 세계 유수기업과 기술력을 겨뤄야 하고 최근 부상하고 있는 중국 건설사들의 저가공세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국가의 건설시장의 침체도 싱가포르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일본, 유럽 건설사들이 싱가포르에 앞다퉈 진출한 것은 동남아 시장의 교두보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건설시장이 침체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및 외국기업들이 이들 국가에 열었던 지사도 폐쇄했을 정도. 한국 건설사 싱가포르 지점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진출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남아시아 시장개척에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간 동남아시아 건설시장이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여 당분간은 건설사들이 싱가포르 시장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건설사협회 리펑 회장은 “앞으로 싱가포르 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기는 힘들다”며 “플랜트, 토목공사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건설을 하지 못하면 이곳에서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조재호 세라야 발전소 삼성물산건설부문 소장 “발전소를 시험가동 하게 되니 웃으면서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세랴아 발전소의 삼성물산 건설부문 조재호 소장 이 웃으면서 운을 뗀다. 조 소장은 10여년간 동남아시아에서 플랜트 건설 현장만 맡아온 베테랑. 구릿빛으로 그을린 그의 얼굴에 안전모 끈자국이 인상적이다. 해외건설의 베테랑인 조 소장도 이번 프로젝트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특히 깐깐하기로 소문난 독일의 지멘스와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는 일을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꼽는다. 그는 “모든 공사을 꽉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진행하는 독일식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한국 스타일의 `문화의 충돌`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삼성이 맡은 부분은 발전소 설비를 건립하는 BOP(balance of plant)와 토목. 특히 BOP는 외부 여건에 따라 변수가 많은 부분으로 공사계획을 벗어나는 경우 자주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엄격한 공기를 강조하는 지멘스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 때문에 양사간 보이지 않는 마찰도 수차례 발생하곤 했다는 게 현장 엔지니어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해수처리 시스템을 시공하던 중 뜻하지 않았던 암반이 발견돼 공사 일정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고 비가 오면 배수를 위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등의 변수가 계속 발생했지만 결국 전체 공기는 훨씬 앞당기게 됐다. 조 소장은 “지멘스 측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흥미진진한(exiting)경험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라”며 “발주처인 파워세라야공사가 최근 현장을 방문, 공사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그는 “세계 일류 플랜트 회사와 같이 일하면서 스케줄 관리, 공사진행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며“이번 경험은 삼성의 기술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주롱섬[싱가포르]=이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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