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훈육」을 받아들이자/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원장(특별기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드디어 우리경제는 IMF의 훈육(Discipline)을 받게 되었다. 한국의 경제운영에 대한 IMF의 훈육을 두고 언론은 국치니, 경제주권의 상실이니, 경제의 법정관리니 하는 용어를 쓰면서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있지만 지금이야 말로 우리는 냉철한 이성을 회복할 때다. 지금까지의 우리 경제주체는 말하자면 허세와 거품이 가득한 삼페인을 과음한 취한이었다. 이제 숙취에서 깨어나 냉철한 자세로 반성해야 할 때가 타의적으로 닥쳐왔다. IMF의 훈육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왜 우리경제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싶다.주택 대부를 받아 장만한 중산층 주택에 할부구매로 가재도구를 들여다 놓은 한 가정을 상상해 보자. 그 집안사람은 안락하고 쾌적한 주거공간 속에서 알맞게 유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기실, 이 집은 부채와 할부구매의 지렛대를 이용하여 미래의 안락과 쾌적을 앞당겨 쓰고 있는데 불과하다. 이 집안이 제대로 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근검절약하면서 부채와 할부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 만일 이 집안이 「할부구매」한 풍족을 자신의 진정한 재력인양 착각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호의호식까지 거듭하게되면, 이 집안의 외화내빈이 「가계부도」란 종말을 재촉하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경제의 실상은 할부구매 형태로 풍족을 앞당겨 누리고 있는 이 가정을 닮고 있다. 우리경제의 성장은 바로 외채외존형 성장이요, 「할부구매형」성장이다. 한국경제가 「성장=외채누적」의 궤도를 그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멤버십을 얻은 것도 알고보면 빚을 내서 산 것이다. 우리의 거대한 채무경제가 허세를 부리다가 IMF의 훈육을 받게 된 것이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경제를 하는 목적은 물론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 주는데 있다. 생활의 풍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우리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국민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절대빈곤은 이미 벗어났으며 오히려 일부 계층의 사치와 과소비가 심각한 사회경제적인 문제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까지 우리가 「할부구매형」 경제성장방식으로 풍요와 삶의 질을 앞당겨 쓸 필요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풍요와 질」에의 길을 좀 느리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가야 할 시점에 이르지 않았는가. 지금부터는 외채에 의존하는 할부구매형 성장의 템포를 늦추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장의 「할부금」을 조금씩 많이 갚아나가야 한다. 현시점에서 우리경제에 알맞은 적정 성장률은 대략 얼마쯤 될까. 경제의 무리없는 성장력의 지표인 잠재성장률이 4∼5%대이니까, 이 수준이 적정성장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의 고성장 신드롬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4∼5%대의 성장이 충격적일는지도 모르지만, 실은 4∼5%대의 성장이란 대단한 것이다. 인류역사의 최대사건이었던 산업협명 당시의 성장률이 5%였다. 경상수지의 격증을 수반하는 7%대의 성장보다는 경상수지의 점감과 동행하는 4∼5%대의 성장이 더 바람직하다. 경제성장의 템포가 둔화되면, 「성장=외채누적」의 패턴 안에 드는「성장이 유발하는 수입」은 줄어들 것이며, 이는 경상수지적자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직접적으로 수입을 줄여나가는 것도 우리경제의 크나큰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수입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장치가 만들어져야 하며, 과소비와 맞물려 돌아가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을 대폭 줄여야 한다. 자본재의 국산화율을 꾸준히 높여 나가면서 기계, 설비의 수입도 줄여야 한다. 해외여행과 기술사용료 및 로열티로 나가는 외화지출도 가능한 한 최대로 줄여 나가야 한다. 또한 거국적인 저축증대의 동인을 풀가동해야 한다. 새 경제팀은 국민저축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각종 방안을 강구하고 또 강구해야 한다. 경상수지적자는 국민저축의 부족과 표리관계에 있다. 투자재원이 국내저축만으로는 모자랄 때 해외저축을 끌어들인다. 국민소득계정에서 경상수지적자와 해외저축은 언제나 일치한다. 따라서 국민저축을 증대하는 길이 곧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나가는 길이 된다. 요약해서 말하면 IMF의 훈육을 받아야 할 우리경제는 이제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우리경제의 「펀드멘털」(경제의 기초체력, 기초변수)에는 별반 문제가 없고, 일시적인 유동성문제로 현재의 경제위기가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경제의 허약한 펀드멘털이 현 경제난의 근본원인이라고 보는 입장에 있다. 이제 허세를 벗어던지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저축해야 한다. 긴축과 저축만이 자력성장, 지속성장의 원천이다. 이것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뷰캐넌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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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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