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님, 출입 목적과 이름, 시간을 직접 적고 들어가십시오."
지난해 12월28일 일요일 오후3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한국전력 중앙통제소 원격감시제어소(SCADA)에 들어가려는 순간 낭패 아닌 낭패를 당했다. 한 보안요원이 에너지 분야 최고정책책임자를 제지한 것이다. 사유는 통제구역 출입대장에 장관이 직접 적고 가라는 것. 아무리 예정된 일정이라도 그 누구도 막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게 이곳의 불문율이다. 장관조차도 예외가 없다.
원격감시제어소는 전력공급 지역으로 들어가는 전기를 끊거나 조절할 수 있는 전력통제 심장부로 국가 안보상 핵심 시설이다. 한전 보안직원의 요구에 윤 장관은 직접 이름과 출입시간, 목적을 기재하고 나서야 통제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전 설계도면이 유출된 후 국가 주요 기관의 보안 불감증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한전이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현장점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주요 시설을 대상으로 실시된 현장점검에서 장관도 예외 없이 보안절차를 준수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전 직원들은 통제구역에 들어갈 때 비밀번호와 함께 지문도 확인하는 등 2중 보안절차를 거친다. 외부인은 보안구역 출입가능 여부에 대한 심의를 거친 후 신분증 등을 맡겨야 한다. 사전에 출입을 승인 받은 외부인은 폐쇄회로TV(CCTV)로 신분과 위험 유무를 확인 후 직원의 동행하에 2중 문을 통과하고 통제구역 출입대장을 직접 써야 출입할 수 있다.
다만 한전은 윤 장관에게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CCTV로 신원 확인절차를 생략하고 직원이 안내해 통제구역까지 들어오는 편의를 제공한 정도다. 반면 윤 장관이 원전 해킹사건 이후 보안실태 점검차 다른 시설들에 갔을 때 한전과 달리 대부분 별도 절차 없이 '프리패스(Free-Pass)'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동석했던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장관이라도 최소한의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기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한전의 철저한 보안관리 실태에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통제구역에 들어올 때는 CCTV를 통해 외부인이 혹시 인질 상태가 아닌지, 위험인물과 동행한 것은 아닌지 확인 후 인솔에 들어간다"며 "장관도 외부인이기 때문에 절차를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흔쾌히 수용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