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임금님 귀와 매도(Sell) 보고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유명한 우화가 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발사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 못하는 답답함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마찬가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한해 증권사에서 낸 기업 관련 보고서 2만1,179건 중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반면 강력 매수 355건, 매수 1만7,863건 등 매수관련 의견은 전체의 86%나 차지했다.'팔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많이 내렸으니 저가매수 매력이 있다'거나 '지금이 바닥'이라는 이유를 대며 장밋빛 일색의 보고서를 날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잘못됐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기업 고객 유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애널리스트도 "매도 보고서를 쓴 뒤에는 기업으로부터의 항의전화는 기본이고 때로는 사내 불만에도 시달리게 된다"며 "해당 기업 주식에 투자한 일부 투자자들도 보고서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전화해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매수에 치우친 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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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투자의견을 아예 내지 않거나 매수의견을 유지하되 목표주가만 내리는 방식으로 소나기를 피해가려는 편법도 속출하고 있다. 결국 분석 대상인 기업과의 관계 유지 또는 기업ㆍ투자자로부터의 항의 걱정에 "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것이다.

물론, 매수 보고서가 모두 허위이고 매도 보고서가 더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보고서 분석 대상이 주로 기업실적이 탄탄한 대형주에 집중돼 있어 매도보다 매수 의견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에 상관없이 매년 90%에 가까운 보고서가 매수 일색으로 채워지는 현상은 분명 국내 증권사들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이다.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 소심하게 사실을 외쳤다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당당하게 보고서에 할 말을 해야 한다. 임금님 귀덕에 살림살이 나아질 사람은 없지만, 증권사 보고서를 믿고 기업에 돈을 거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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