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토요 Watch] 테마주의 '두얼굴'

상승 이끄는 호재? 작전 세력 놀이터? 대박 과 쪽박 사이 위험한 줄타기

80년대 북예멘 유전개발 테마주로 첫선… 정치인 테마주는 17대 대선 전후 고개

성장동력 갖추고 시장형성 땐 큰 수익… 일시적 재료·소문만 좇아가단 '큰코'


'테마주'는 한국 경제의 호황기였던 1980년대부터 주식시장과 공존하며 본격적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첫 번째 테마주로 꼽히는 북예멘 유전 개발 관련주는 1984년 상승 바람을 탔다. 당시 삼환기업이 북예멘 마리브 유전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국내 주식시장에 전해지면서 선경(현 SK네트웍스), 유공(현 SK이노베이션), 현대종합상사 등의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종목이 반년 동안 각각 2~3배 이상 급등했다. 3년 후인 1987년 12월부터는 북예멘 광구에서 본격적으로 원유가 생산되면서 테마주의 실체가 확인됐다.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러시아 등에 대해 적극적인 친교 정책을 추진하던 1980년대 후반에는 소문에 의해 형성된 '만리장성 4인방'이라는 테마주가 나타났다. 당시 개방 움직임을 보였던 중국 당국이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바람막이를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알루미늄 새시를 납품하는 업체가 인기를 끌었다. 소문은 꼬리를 물었다. 바람막이를 설치하는 인부들의 작업화를 제조한다는 고무 업체에 이어 인부들의 간식으로 쓰일 호빵 제조사까지 합류했다. 마지막에는 제약 업체까지 만리장성 테마주에 묶였다. 인부들이 호빵을 먹다가 소화제를 먹을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윤재수 전 한국투자증권 이사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에서 "테마주는 주식 시장 내에서 그 시대의 산업·경제 상황 및 사회적 경향 등과 어우러져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데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속도감에 편승해 발 빠른 대응을 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1999년대 후반부터는 정보통신(IT) 기술 관련 종목이 테마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미국 나스닥(NASDAQ) 시장에서 넘어온 'IT 버블'이 영향을 미쳤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디지털방송, 게임·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인 테마주'가 처음으로 고개를 든 시점은 2007년 17대 대선 전후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혔던 이명박 후보는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에 보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식시장은 이 후보의 공약에 열광했다. 20조원이 넘는 토목공사에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을 따내는 기업은 대박을 칠 것이라는 분석이 증권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가장 큰 수혜는 주로 정부가 발주한 공사를 진행했던 이화공영이 누렸다. 이화공영의 주가는 2007년 개장일에 2,100원으로 출발했으나 12월7일에는 6만7,300원을 기록했다. 약 1년 사이에 주가가 무려 32배 뛴 것이다. 이화공영과 비슷한 이유로 특수건설·삼호개발·동신건설 등도 상승 흐름을 탔다. 다만 이런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대선이 끝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계획이 조금씩 변경될 조짐을 보이면서 테마주의 주가도 고꾸라졌다. 실체가 없는 뜬소문이 어떻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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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등 유력 정치인의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인 테마주에 비하면 4대강 관련주는 그나마 질이 좋은 편에 속한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8대 대선이 진행됐던 2012년 당시에는 4대강 사업처럼 특정 정치인과 정책·사업을 연결 지을 만한 고리가 부족했던 탓에 학연·지연·혈연을 비롯해 개인적인 인연까지 온갖 끈이 다 동원됐다"고 짚었다. 실제 넥스트칩은 김경수 대표가 박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됐다.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의 경우 우리들병원이 테마주로 따라붙었다. 우리들병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허리디스크 수술을 집도한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다. 안 후보의 테마주로는 그가 세운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외에도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닿았던 다믈멀티미디어·써니전자 등이 거론됐다. 이처럼 정치인 테마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해당 기업의 실적 또는 성장 동력과 연계돼 언급됐던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대부분의 테마주는 선거가 끝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거나 도리어 뒷걸음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인연 테마주'는 그칠 줄 모르고 양산되고 있다. 반기문 유엔(UN) 총장을 비롯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관련 테마주가 이에 해당한다. 한국거래소 예방감시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정치인 테마주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우선 2012년 대선 테마주로 시세 차익을 거둔 경험이 있는 특정 투자자가 유력정치인의 개인사를 미리 학습한 뒤 상장사 대표 또는 임원 중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을 찾아둔다. 이후 해당 정치인에 대한 인사 또는 지지율 상승 소식이 전해지면 관련 정보를 재빨리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바일 메신저 등에 뿌린다. 이렇게 1~2개 종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 또 다른 일반투자자들이 다른 종목의 연관성을 언급하며 살을 붙인다. 이렇게 하나의 정치인 테마주가 만들어진다.

조재훈 KDB대우증권 영업부 이사는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국내 주식시장의 악화된 기초체력에서 찾는다. 조 이사는 "경제 상황이 점차 나빠지면서 주식시장의 수급이 떨어지자 실망한 일반투자자들이 비정상적인 테마주를 쫓고 있다"며 "과거 같으면 시장에서 자동으로 걸러졌을 나쁜 테마주들이 유행하면서 일반투자자들만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존재하는 법이다. 제2차 석유파동 이후 북예멘에서 자원개발에 성공한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되며 테마주라는 개념이 형성됐듯 본래 테마주는 주식시장의 안과 바깥에서 기업 성장 동력에 대한 통찰력·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진다. 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테마주는 중장기적으로도 지속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네이버(NAVER(035420)), 다음카카오(035720)(옛 다음) 등이 증명했다.

윤 전 이사는 '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를 통해 "대부분의 테마주는 일시적인 재료로 부각됐다 사라지지만 모든 테마주가 '게릴라 식'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장 동력이 확실한 테마주는 지속적으로 시장 규모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부 부장 역시 "주식시장에서 테마주가 형성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정치인 테마주와 같이 '알맹이 없는' 종목이 문제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중요한 점은 어떤 테마주가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지 판단하는 방법이다. 김남국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특정 종목과 연결된 테마가 하나의 산업 분야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핀테크(FinTech) 또는 사물인터넷(IoT) 같은 경우 국내 유명 IT 기업을 비롯해 삼성·애플 등 글로벌 기업까지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만큼 보편화된 산업군으로 인식해도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장 정체기에 머문 거대 기업이 신성장동력 발굴 차원에서 뛰어드는 산업군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핀테크·사물인터넷 외에도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것은 3D프린터 관련 종목이다. 다른 신기술 테마주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3D프린터 시장이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언젠가는 기간 산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앞으로의 기술 발전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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