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제2의 휴맥스를 기다리며

지난 1989년 서울 신림동의 한 포장마차에 7명의 서울대 공대생이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서울대 제어계측과 대학원에 다니던 변대규 대표는 동기들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우리도 한번 창업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들에게는 물론 거창한 사업계획이나 한푼의 창업자금이라도 있을 리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2011년 1월. 변 대표는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매출 1조원 시대 진입을 선언하며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롤모델로 삼을만한 기업을 만들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벤처의 신화창조 이룬 역군들 맨주먹으로 창업해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매출 1조원대의 제조벤처로 우뚝 선 휴맥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성공신화로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2000년대 초 벤처거품을 겪으며 숱한 벤처 1세대 기업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터에 홀로 꿋꿋이 버텨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휴맥스가 다른 벤처기업과 달리 올곧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는 내부조직 혁신과 셋톱박스라는 한우물 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도 휴맥스 사무실을 찾는 이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벤처가 외형이 커지면서 초기의 도전정신을 잃어버리고 창업공신들의 입김만 세지는 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여기다 주주들의 이익에만 신경 쓰느라 신기술 개발을 등한시하고 이리저리 주변기업을 사들이며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서는 것도 벤처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우리가 휴맥스의 성공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 국내 벤처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반증이자 새로운 성공신화에 목말라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래저래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제 2의 벤처 붐이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수많은 새내기 벤처들은 좋은 아이템을 갖고도 개발자금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금이야 휴맥스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변 대표도 사업 초기에는 숱한 좌절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것저것 사업 아이템에 손을 댔다가 실패했는가 하면 거래처 부도로 갖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오죽하면 후배 벤처기업인들이 그에게 '실패 전문가'라는 별명을 붙여줬을까 싶다. 그 스스로도 주변에 벤처기업인이 겪을 수 있는 실패는 다 겪어본 사람이라는 말을 즐겨 하곤 한다. 휴맥스야 갖은 좌절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지만 아직도 실패를 용인하지 않은 우리 문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도전정신으로 뭉친 벤처기업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오히려 한번 실패의 쓴맛을 본 벤처일수록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저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한때 부도를 냈다가 다시 회사를 꾸린 한 벤처기업인은 거래처는 물론 직원들에게도 자신이 과거 부도를 냈던 얘기를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행여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면 고객이 떨어져나가고 회사 경영에도 마이너스가 될까 봐 걱정스러워 그랬다는 것이다. 국내에 창업하는 벤처기업 10곳 가운데 7곳은 망한다는 통계자료까지 감안할 때 칠전팔기의 도전정신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기업인 재기 돕는 제도 마련을 이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연대보증인 폐지 등 기업인들의 재기를 북돋우고 재창업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방안도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많은 벤처기업인들은 금융권에서 대표자 연대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기술형 혁신창업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급 인력은 골치 아픈 창업을 꺼리고 의사나 공무원 같은 안전한 직장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26일 청와대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강소기업 대표는 "우리는 작은 기업이지만 꼭 성과를 내서 선배 기업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패기로 뭉친 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나와야 국민소득 3만달러ㆍ4만달러 시대도 한층 앞당겨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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