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큰 스님 법인에게 길을 묻다] "남을 의식한 삶은 불행… 주체적 사유 힘 키워야 행복해져"



좋은 대학·직장·결혼만 좇아 사람들 너무 안이한 인생설계

책읽기·낯선 경험들 통해서 어려서부터 이성·감성 충전을


최근 인문학에 대한 열풍도 생각하고 싶어하는 인간 본능

"상대방에 고통 주지 않겠다"

보편적 공감 능력 기른다면 양극화·남북문제도 풀릴 것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 등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첨단 IT시대에 실시간 검색이 언제 어디서든 이뤄지며 그때 그때의 궁금증이 실시간으로 해갈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검색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 양극화, 남북 갈등 등 난마처럼 얽힌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해 해법의 실마리는커녕, 서로의 주장만 거세지며 우리 사회가 더욱 꼬여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히려 빠르게 도는 쳇바퀴 안에서 반복된 일상을 살면서 현대인들은 이성적 사유가 마비되고, 감성이 점점 더 메말라 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사유의 힘을 잃어가며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쉽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라"며 사유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법인(54·사진) 스님을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만났다. 법인은 최근 '자신의 생각을 회복하자'는 내용을 담은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이란 책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인간은 태어난 후 인생설계를 안이하게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삶이 시작된 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초중고를 다니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상위권 대학을 가고, 그 후 결혼을 잘 하는 이런 단계별 인생설계가 성공이고 행복이라는 믿고 있는 이들에게 비판을 가한 것이다.

진정으로 이러한 삶이 행복하다고 믿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법인 스님은 이러한 삶이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맡기는 삶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유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유만이 주체적인 '나'를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살 때야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인 스님은 구체적으로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사유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일단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할 때는 부모가 자녀를 도서관으로 안내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 감수성을 느끼게 하라고 조언했다.

법인 스님은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있는데, 바로 우리네 부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책보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이다. 선진국에선 부모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아이들이 책과 낯선 경험 등을 통해 사유의 힘을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부 간에도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고 낯선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각자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이성과 감성이 충전되고, 이후 이어지는 대화는 할 얘기가 없어 단순히 일상생활에 대한 잡담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울림이 있는 메시지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확보가 쉽지 않은 직장에선 일단 개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책 읽을 시간, 사람을 만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과감히 줄이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유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노력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사유하는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인 스님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인 스님은 "인간은 근본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회귀 본능이 있다"며 "시끄럽고 바쁘게 살다 보면 조용히 생각하고 싶어지고,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가슴이 허하고 공허해지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인 스님은 인문학이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수단에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학문인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읽을 경우 제대로 된 사유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인문학을 포함한 책을 읽을 때 원칙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선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느껴야 하고,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사유가 본인만의 만족에서 그치지 않고 공감을 통한 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법인 스님은 양극화와 남북 갈등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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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보편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 스님은 사유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집단이 지향하고 있는 것들이 다른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인적 통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고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본인만의 해법을 제시했다.

법인 스님은 "남북문제는 이기고 지는 문제로 풀면 안 될 것 같다"며 "하는 행동이 밉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민간차원에서 끊임없는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끊임 없이 받고 나면 (북한이)호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나중에 통일을 논의할 때 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 청년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법인 스님은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기 때문에 직장, 건강 등도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으로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된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훌륭한 배우자를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함이란 격이 있고, 정의로우며, 예의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법인 스님은 오는 2018년이면 출가 40년을 맞는다. 그는 사회 속에서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러한 노력을 좀 더 강화하기 위해 올해 참여연대 대표를 맡았다. 법인 스님은 "사회활동 하면서도 정파나 당파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활동을 하게 된 것"이라며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잘못된 법과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 만큼, 사회 활동의 끈을 놓치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국내 첫 템플스테이 청년출가학교 열어 사회 속에 불교 전파

■ 법인 스님은

박성규 기자

오늘날 템플스테이에 해당하는 '새벽 숲길' 이라는 프로그램과 청년출가학교를 불교계 최초로 연 법인 스님은 중학교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했다.

광주 향림사에 놀러갔다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라는 난생 처음 듣는 법문에 답답한 마음이 뚫리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후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에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라는 구절에 환희와 막막함을 동시에 느꼈다. 만해 전집을 다 읽고 난 후 향림사에서 천운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법인이란 법명은 은사인 천운 대종사가 지었다. 법 법자(法)에 참을 인자(忍)의 단어가 조합된 법명은 '진리를 추구하려면 견뎌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법인 스님은 출가 후 1985년 어느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하지만, 미련 없이 문학을 접고 경전 공부와 수행에 몰입했다. 늘 품고 다녔던 수행자의 역할에 대한 화두는 자연스레 사회과학 서적 탐독으로 이어졌고, 절 너머의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됐다.

1990년에는 도법, 학담, 현웅 스님을 만났다. 도법 스님에게 수행자의 정신과 처신을, 학담 스님에게 교리의 재해석을, 현웅 수님에게 불교정신의 시대적 구현의 지혜를 배웠다. 1994년 조계종 개혁 불사에 직접 참여했으며, 이후 지리산 실상사에 깃들었다(거처했다). 승가전문교육기관 '화엄학림'에서 화엄경을 연구하며, 관계의 그물망에 천착했다.

2000년에는 해남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오늘날 템플스테이에 해당하는 '새벽 숲길'이라는 프로그램을 불교계 최초로 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불교를 하자는 취지였다.

법인 스님은 "사람에게 평화와 안락을 주는 게 종교의 목적인데, 종교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본 후 절을 일반인에게 개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4년간 1만2,000여명의 스님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조계종 교육부장을 맡아 승가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승가교육을 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고뇌하는 청년을 위한 템플스테이인 청년출가학교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현재 해남 대흥사 일지암 주지로 있는 법인은 이 곳에 관심사병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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