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해 일반기업이나 공기업 등에 빌려준 대출잔액이 8월 말 현재 13조1,571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64.7%나 늘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1월의 13조1,361억원을 웃돌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9년 2월의 15조884억원 이후 최대치다. 세수부족으로 재정여건이 여의치 않자 중소기업 신용대출과 정책금융공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등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자주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해 6월부터 기술형 창업지원 프로그램 등 중소기업 대상의 금융중개지원 대출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 대출 잔액은 현재 9조6,981억원으로 1년 전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3월에는 정부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조달용으로 3조4,590억원을 정책금융공사에 저리 대출해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재정을 투입해도 되는 사안에까지 한은 자금이 동원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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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돈을 찍어 대출하는 건 한은법에 규정된 사항이라 불법이 아니다. 한은법은 '자금조달·운용 불균형으로 유동성이 악화된 금융기관(제65조)'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영리기업(제80조)'에 긴급 여신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유동성 악화'나 '중대한 애로' 등의 기준은 전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 몫이다.

정부가 손쉬운 한은의 발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가 재정을 동원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중앙은행의 돈은 금통위 의결만 거치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가가 낮고 발권력에 의해 공급된 유동성이 세금처럼 당장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풀린 돈을 흡수하기 위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 등은 결국 국가부채가 될 수 있다. 만에 하나라도 한은의 발권력이 기획재정부 등 정부 입김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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