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단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한국 외교의 입지가 강해질 수 있다. 중국을 시발로 미국까지 이어질 정상외교를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분위기가 기대된다. 부수적으로 중국과 경제 협력도 뒤따를 수 있다. 대중 수출 부진 속에 위안화 평가절하 같은 악재를 만난 한국 경제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사건건 반목하던 여야가 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식 참가를 환영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남은 문제는 열병식 참관 여부다. 청와대는 열병식에 참석할지 말지에 대해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끝까지 신중하게 검토해야겠지만 열병식까지 참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일본도 안가는 전승절 행사에 왜 가느냐’며 중국행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얼빠진 소리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외교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인 한미 동맹이 중요하고 미국 쪽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사안임에 분명하나 미국의 불만이 있다면 설득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천안문 광장에서 9월 3일 열릴 예정인 열병식 행사 참석에는 네 가지 당위성이 있다.
첫째, 한국은 실질적으로 전승국의 일원이다. 만주 일대의 독립군은 물론 상하이임시정부의 광복군마저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어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고귀한 피를 흘렸다. 일제의 만행과 침략을 공동의 적으로 삼았던 한국이 중국의 승전기념 열병식 참관을 꺼릴 이유가 없다.
두번째, 상하이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의 법통에 비추어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석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상하이에 4일 열릴 예정인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직접 참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임정의 정신과 독립전쟁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중국이 항일전쟁이 주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전승절과 열병식 자체가 원인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전체를 가리고 부분만 보는 격이다. 일본과 싸웠던 중국군의 주체는 홍군(중국 공산군)이 아니라 국민당 군대였음은 역사적 사실이나 1971년 미국의 주도로 대만이 국제연합(UN)에서 축출되고 ‘중공’이 안전보상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한 이래로 한족 국가로서 대표성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있고 전승국의 지위 또한 그렇다.
세번째로 중국은 예측 불가능한 북한에 제한적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를 넘어 통일에 이르기까지 국가 이익을 대통령의 방중과 열병식 참관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네번째 당위성은 효율과 관련된 문제다. 전승절 기념식을 참가하고 열병식에는 가지 않을 경우, 아예 불참하는 것만 못할 수 있다. 전승절 행사의 핵심인 열병식 불참은 맛있는 음식 대신 스스로 알맹이 빠진 찐빵을 택하는 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나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고 열병식에는 불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같은 선택을 대안이라는 일부의 견해도 맞지 않다. 한국이 독일과 일본 같은 전범 국가인가. 메르켈 총리의 러시아 열병식 불참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제적 압력에 동조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방중 성과를 극대화하느냐에 있다.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박 대통령이 오는 10월 미국 방문을 통해 양국간 이해의 폭을 넓히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외교 정책의 조합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도 아래 한·중·일 3국이 머리를 맞대 역대 긴장과 갈등을 조정할 수도 있다.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과 열병식 참석이 그 출발점이다.
외교는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우리에게도 반드시 무엇인가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불과 두 달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세계를 움직이는 빅 투(G2)의 정상들과 만날 박 대통령의 정상 외교 장정에 성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