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임, 중독물질 규정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최근 새누리당이 게임을 마약ㆍ도박ㆍ술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게임이 중독 물질에 편입되면 정부는 게임 업계에 대한 통제권을 한층 강화하는 것은 물론 각종 중독 치유를 위해 게임 매출의 일정 부분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하게 된다.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여해 지금이라도 게임중독에 따른 사회적 폐해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게임 업계를 비롯한 반대 진영은 게임중독법으로 대표적인 콘텐츠산업인 게임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국내외 논문 건강문제 심각 증명
중독되지 않을 선택권 보장 필요


중독은 특정한 물질이나 행위를 과도하게 사용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 기능과 역할 수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알코올ㆍ마약ㆍ도박ㆍ인터넷게임 등 그 대상은 다르지만 과도하게 사용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중독상태가 되면 다양한 심리ㆍ행동ㆍ기능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

각각의 물질ㆍ행위가 아닌 그로 인한 중독을 보건복지와 정신건강의 문제로 정의하고 국가가 나서 보호환경 조성과 범부처 차원의 통합적인 예방ㆍ치료ㆍ재활지원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법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다. 따라서 정신의학계뿐만 아니라 중독을 연구ㆍ예방하고 치료하는 간호ㆍ사회복지ㆍ임상심리ㆍ아동복지ㆍ보건 등 전문가들과 교사ㆍ학부모 단체가 '중독과 중독폐해 없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에 대한 희망으로 이 법안을 지지하고 숙원하는 것이다.

인터넷게임 중독이 여러 중독 중 가장 최근에 경험되는 것이라 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다른 중독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매출이 10조원에 달하는 미래창조콘텐츠산업'의 위축과 기업 생존권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더해진다. 나아가 문화콘텐츠로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조장과 콘텐츠에 대한 국가권력의 규제우려 등이 겹쳐지며 '게임이 마약이냐'는 슬로건으로 확대돼 가는 과정은 너무도 안타깝다.

인터넷 중독의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기에 이 법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법은 특정 의료행위를 정의하는 법이 아니다. 이 법은 엄연히 우리 눈앞에 존재하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과 '국가정보화기본법'에도 정의돼 있는 인터넷 중독에 대한 예방 교육과 홍보ㆍ상담ㆍ치료ㆍ재활ㆍ복지서비스를 확실히 제공하자는 것이다. 주장대로라면 관련 법의 인터넷 중독 조항을 삭제해야 할 일이다. 최근 30여편의 뇌영상 연구를 통해 인터넷게임 중독자에서 물질중독과 동일한 뇌 내 쾌감중추의 이상과 관련 부위의 부피감소 등이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 또한 국내외 1,000편 이상의 연구논문이 인터넷 중독이 중요한 건강 문제임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의 정신행동질환진단편람 DSM-5는 섹션3(부록)에 인터넷게임 장애가 새로이 등재된 것은 축적되고 있는 의학적 근거를 인정한 것이며 세계표준 진단기준 마련을 위해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계 모든 곳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이 충분히 심각해져 표준화된 진단기준이 만들어질 때를 기다릴 정도로 우리의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창조문화 콘텐츠의 육성은 중요하며 주가하락과 산업위축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우려다. 그러나 관련 산업과 콘텐츠의 이미지만큼이나 게임중독에 빠져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를 상실한 아이들의 미래도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중독될 수 있는 자유만큼이나 중독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법이 마련된다면 중독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인터넷게임 중독에 대해서도 보건복지,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원칙에 따라 국가계획과 실태조사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중독관리센터설치와 부처 서비스 간 연계활성화로 국민들이 제때 더 쉽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혹여 생길 수 있는 인터넷게임 중독이란 상처를 보듬어주는 보호안전망이 튼튼해져야 열심히 즐기는 문화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 법이 전문가의 잇속을 추구한다고 까지 말한다. 어떤 이의 잇속이 진실한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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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의학적 확증·합의 없는 상태
입법 취지·근거도 비현실적


여권에서 발의한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은 말 그대로 중독자 치료를 지원하자는 좋은 취지의 법안이다. 그런데 왜 이 법안은 '게임중독법'이라 불리고 왜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은 술ㆍ마약ㆍ도박과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정신의학학회(APA)에 따르면 도박은 비물질 관련 장애로 간주되는 반면 인터넷 게임과 관련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결과가 축적돼야 '장애'로 정의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학적 확증도 학자들의 합의도 없는 상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독물질'로 명명하고 나아가 국가가 나서서 치료하자는 발상의 암묵적 근거는 '게임은 비생산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공부 중독이나 운동 중독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은가. 게임을 술ㆍ마약ㆍ도박과 하나로 묶는 근거도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는 게임을 바라보는 법안의 시각이다. 공부는 '좋은', 게임은 '나쁜'중독이라는 '학부모의 시각'이다. 게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외부자가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당사자'에 감정이입해서 전국민에게 적용될 법률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드라마에 빠져 공부를 안 하는 아이의 부모는 TV를 내다 버리기도 하지만 이들의 시각으로 방송법을 만들 수는 없는 것과 같다.

학부모들은 말한다. 게임 때문에 학교 폭력이 생긴다고. 여권의 신의진 의원도 엄마를 때린 아이의 예를 들어 '게임의 공포'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게임 '중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주의력 결핍 과잉 장애(ADHD)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 게임에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처럼. 게임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놀이'다.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 여기가 인식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게임을 '놀이'가 아닌 마약이나 살상무기 정도로 인식하고 만드는 대책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꿴 셈이다.

법안의 근본적 시각도 문제지만 입법 취지나 근거도 비현실적이거나 비논리적이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이 구별되지 않고 실태조사가 부실하다면서 실태가 심각하다고 하고 그나마 최근 5년간 인터넷 중독이 꾸준히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무시하고 수많은 장르의 게임과 다양한 뉴미디어 콘텐츠들을 한 단어로 퉁치고 게임 규제가 아니라면서 강력한 규제 조항을 담고 있다. 정부 관련부처들도 관리체계가 다른 여러 물질들을 중독관리센터로 몰아서 관리하면 오히려 전문성을 훼손하고 법적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물론 도박 중독에 비견할 만큼 심각한 상태의 게임 집착 청소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게임을 마약과 같이 묶어 국가 관리 대상으로 상정하고 중앙집중식으로 규제해야 마땅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이 법안은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 두 종류로 구분해서 낙인 찍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건강한 정상인'과 '중독환자'의 구분이 아니라 '게임을 적대시하는 정상인'과 '게임을 만들거나 즐기는 비정상인''의 구분이다. 모쪼록 죄책감이 따르지 않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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