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령주막의 막걸리와 부침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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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고즈넉함이 살아 있는 영주의 무섬 전통마을은 물이 휘돌아가는 지형 탓에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외지와의 소통 수단이었다고 한다. 태극무늬 외나무 다리를 한 가족이 신기한 표정으로 걸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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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 목조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부석사 무량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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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죽령엔 선비 발자취… 무량수전엔 선묘의 사랑이
■ 선비의 고장 영주
영주=글ㆍ사진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죽령주막의 막걸리와 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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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고즈넉함이 살아 있는 영주의 무섬 전통마을은 물이 휘돌아가는 지형 탓에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외지와의
소통 수단이었다고 한다. 태극무늬 외나무 다리를 한 가족이 신기한 표정으로 걸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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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목조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부석사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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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는 흔히 ‘전통의 향기가 가득한 선비의 고장’이라 불린다. 영주에 가면 조선 시대 수많은 학자들을 길러 낸 소수서원과 선비들의 생활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이 있고 안동 하회마을보다도 보존이 잘 된 전통 가옥들이 한데 모인 무섬 마을도 남아 있다. 특히 영남 3대 관문 중 하나인 죽령 옛길이 10여년 전 복원되면서 트래킹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영주시는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선비문화축제를 마련, 선비들의 정신 세계와 생활 방식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비들의 발자취 남은 죽령 옛길
삼국사기·온달장군… 길마다 옛이야기
외나무다리·고택 '수도리 마을의 상징'
영주에 가면 꼭 들러 볼 곳 중 하나가 바로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기 위해 걸음을 내딛던 죽령 옛길이다.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의 3대 관문 중 하나로,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룩한 지점에 자리잡은 죽령(해발 696m)에 올라 서면 서쪽으로 단양 땅, 동쪽으로 영주 땅이 시야에 들어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 ‘죽령이 처음 열렸다(開竹嶺)’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죽령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죽령을 열었다는 것은 죽령을 개척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하니 당시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해 소백산 자락에까지 치세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시대 한동안은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하면서 양국 군사가 뒤엉키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시작한 191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도 여러 지방에서 서울로 왕래하는 길목이었기에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나 공무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오는 관원, 봇짐장수들이 모두 이 곳을 거쳐갔다고 한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이 중앙선 철도를 놓고 터널을 뚫으면서 인적이 끊겼으며 지난 2001년에는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수십 년간 숲과 덩굴에 묻혀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혀져 가던 이 길을 영주시가 지난 99년 중앙선 희방사역에서 죽령 주막이 있는 언덕마루까지 2.5㎞ 구간을 자연탐방로로 복원, 숲과 나무, 산새, 다람쥐들을 벗하며 걸어볼 수 있게 됐다. 오히려 개발 시대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동안 자연이 맘껏 숨을 쉬며 그대로 보존돼 은밀한 내면을 간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죽령 옛길로 가려면 먼저 희방사역을 찾아 200m 정도 걸어서 오르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만나게 되는 곳이 출발점이다. 숲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 볼 수 있었던 죽령에 대한 기록, 고구려 온달장군이 벌였던 전투 이야기, 주막거리 터 이야기 등을 적은 안내판이 있다.
길 중간쯤에 도착하면 조선 명종 때 풍기군수 퇴계 선생이 형님인 온계 선생을 마중하고 배웅했다는 잔운대와 촉령대를 만날 수 있다. 온계는 당시 충청 감사로 있으면서 고향인 예안(현재의 안동)을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서 잠시 형제간의 정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정상에 오르면 현대식으로 복원된 죽령 주막이 나오는데 여기서 들이키는 막걸리 한 사발과 부침개가 여행의 감칠맛을 더한다.
◇선묘의 전설이 전해지는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고찰로 당대 최고의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어서 뜬 돌인 ‘부석(浮石)’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부석사는 경관이 뛰어난 절로 유명하다. 절이 들어서기에는 다소 옹색한 비탈진 곳에 자리했지만 오히려 그런 오묘한 자리 배치가 절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뜬 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절의 모든 건축물은 축대를 쌓아올린 후 그 위에 지어졌다. 즉 축대 위에 건물들이 떠 있는 셈이다.
부석사의 떠 있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이다. 안양루 누각이 마치 망루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고 그 아래 돌계단을 오르면 멀리 무량수전이 보인다. 무량수전은 목조건축 기술의 정수로 평가받는 배흘림 기둥(가운데 부분이 불록하고 나와 있어 지붕의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것)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부석사는 절의 창건과 관련된 아름다운 전설도 있다. 의상이 중국에 머물 때 선묘라는 여인이 그를 흠모했다고 한다. 선묘는 의상의 제자가 돼 10년 동안 뒷바라지를 하다 어느날 의상이 귀국 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자 주저 없이 몸을 바다에 던져 용으로 변해 의상의 뱃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의상이 부석사를 세울 때는 산적들이 훼방을 놓자 선묘가 큰 바윗덩어리로 변해 이들을 쫓아냈고 그 후 선묘는 석룡으로 돌아와 무량수전과 무량수전 석등 사이에 10m가 넘는 몸을 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제 시대 무량수전 앞 마당을 파헤쳐보니 커다란 용 모양의 돌 덩어리가 땅 밑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즈넉함이 살아 있는 수도리 전통마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섬(무섬 마을)이라 불리는 전통마을이 있다. 동쪽 500m 지점에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만나 한바탕 용틀임을 하며 마을 전체를 태극모양으로 한 바퀴 휘감아 흘러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이라고 불리게 됐다. 수도리라는 지명도 일제때 물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은 처가인 영주 무섬마을에 머물며 ‘별리’라는 시를 완성하기도 했다. 고향의 아름다운 정취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심이 피어날만하다.
이 마을은 조선 중기에 마을 서편 강 건너에 살던 반남 박씨인 박 수(1641~1699) 가 들어와 집을 짓고 살다가 그의 증손녀와 혼례를 치른 예안 김씨 김 대를 불러들여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취락구조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로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이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서 강을 건너가서 농사를 지었다.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가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큰물만 지면 마을 전체가 고립되는 육지 속의 섬 마을이었다. 지난 2005년 외나무다리를 복원해 해마다 10월 외나무다리 축제를 열고 있는데 하얀 모래밭 너머로 태극 모양의 외나무다리가 어울린다. 무섬 전통마을보존회장 김한세(71) 옹은 “마을 뒷산은 태백산 끝자락, 앞산은 소백산 끝자락이 만났고 앞쪽으로는 태백산 물과 소백산 물이 합쳐져 만들어졌다”면서 “풍수학적으로도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핀 형세 또는 물 위에 연꽃이 뜬 형세로 기운이 좋은 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섬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보존이 잘 된 고택들이다. 40여채의 집 가운데 30여채가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이거나 초가집이다. 사랑채, 안채, 대청마루에 마당까지 갖춘 고색창연한 한옥들과 돌담이 골목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박 수 시절 지어진 집인 만죽재는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반남 박씨 판관공파의 종가다.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이 걸린 또 다른 고택 ‘해우당’은 19세기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지금 무섬마을은 새단장이 한창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동원돼 고택들을 수리하고 마을 한쪽에 짓기 시작한 대형 한옥의 마을자료전시관도 완성돼 가고 있다. 연내 전시관을 개관한 후 오는 2011년부터는 고택에서 민박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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