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 이 전 부총리는 이날 상반기 안에 추진할 7~8개의 굵직한 정책일정들을 토해내며 경기회복을 위한 불쏘시개를 부어댔다.
시장에서는 경기회복을 자신하는 이헌재 특유의 레토릭에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심리가 잔뜩 부풀어올랐다. 주가는 거침없이 수직상승 곡선을 그렸고 연말 보너스 다발을 움켜쥐었던 일부 계층의 돈 쓰는 모습에 서민들도 덩달아 백화점을 찾았다. 지갑의 두께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데. 한때는 금리인상 여부가 테마로 떠오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 전 부총리가 떠난 지 한달. 시장에서 이헌재의 카리스마는 사실상 소멸됐다. 경기지표들은 여전히 방향성을 상실한 채 안개국면에 빠져 있다. 일각에서는 연초의 소비회복이 ‘기지개’가 아니라 ‘하품’이었다는 비관적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월 소비자전망지수가 2년6개월 만에 기준치인 100을 넘어선 것은 6개월 후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긍정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소극적 의미의 기대”라며 “최근의 여건을 볼 때 경기회복은 도저히 빠르게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양상 낙관론을 경계하는 어투로 보이지만 오히려 비관론이 더욱 진하게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 기조에 대한 해석은 이처럼 이 전 부총리가 퇴진한 지 한달 만에 변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헌재가 심어놓은 낙관의 구호에 속았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이 전 부총리의 카리스마가 그립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에 대한 이 같은 평가와 맞물려 한덕수 부총리의 경우 여전히 불투명한 경기상황 탓인지 비교적 솔직한 언변으로 현실경기를 가감 없이 국민들에게 전해주려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부총리가 “1,000포인트가 넘는 주가는 오버슈팅의 의미가 크다”고 말해 주식투자자들로부터 원성을 들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려는 의도는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 상황이 바뀌었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 당국이 정책기조를 원점에서 다잡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지난해 초와 같이 심리가 주도한 경기회복 기대감은 (유가 등) 또 다른 충격에 의해 냉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의 경기회복 강도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춰 잡는 냉정함”(류승선 미래에셋증권 연구원)과 함께 섣부른 낙관론을 버리고 시장에 경기부양에 대한 시그널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 연구위원은 “최근 여건을 볼 때 내수에 포커스를 둔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해 보인다”며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이 떨어져 있는 만큼 서민들이 많이 쓰는 품목에 대해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의 경우 경기가 진짜 안 좋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필요성이 절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이어 “레토릭은 유효기간이 있기 마련이어서 실상을 솔직히 국민에게 보고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 모색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며 “한 부총리가 앞으로 맡아야 할 역할은 바로 그런 것들”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