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3월 9일] 융합시대와 신산업의 敵

지난 2009년 2월 통신사업의 성장 정체로 고민하던 KT는 u 헬스케어 사업 진출 계획을 세웠다.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집이나 차 안에서도 휴대폰 등으로 원격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KT는 서울대병원과 손잡고 'u 헬스케어 전문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다는 구체적인 밑그림까지 그려놓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몇 달 뒤 KT는 해당 사업을 접었다. 현행법상 u 헬스케어 사업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 의료법은 의사ㆍ의사 간에는 원격진료를 허용하지만 의사ㆍ환자 간에는 금지하고 있다. 안전성과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IT·벤처, 정부 직접 육성은 한계 u 헬스케어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신산업의 등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과 만성질환자 급증으로 u 헬스케어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사업이 활성화됐다. 미국만 해도 만성질환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홈&모바일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올해 57억달러에서 오는 2015년에는 336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ㆍIBMㆍ마이크로소프트ㆍGEㆍ퀄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의료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며 관련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반도체 칩 제조업체인 퀄컴의 경우도 현재 심장 관련 데이터를 병원으로 전송해 상담받을 수 있는 u 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 서비스하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적 제약 때문에 기업들이 u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규제가 신산업 등장을 가로막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인터넷TV(IPTV)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2005년부터 IPTV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방송계ㆍ통신업계가 IPTV를 '방송으로 볼 것이냐 융합 서비스로 볼 것이냐'를 놓고 지루한 논란만 벌이다 4년을 허송세월한 끝에 지난해 1월 겨우 상용 서비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IPTV의 발전도 상당히 지체됐다. 그러는 사이 미국ㆍ유럽에서는 IPTV를 상용화해 이미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최근에는 IPTV를 휴대폰으로 서비스하는 모바일 IPTV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에서 이동통신망을 통해서는 IPTV 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술융합 시대다.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들을 얼마나 빨리 창출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애플이 대표적 사례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단숨에 세계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 것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꿰뚫어본 기술 융합전략의 성과 덕분이다. u-헬스케어 등 규제부터 없애야 그러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왜 애플 같은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기업들이 시장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지 못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정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최근 정부는 코리아IT펀드를 조성해 제2의 IT붐을 이룬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IT활성화에 나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기술융합 시대에는 정부가 직접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매일 시장과 접하는 기업들도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때 찾아내기는 어렵다. 기술융합 시대에 우리 IT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하려면 신산업의 태동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부터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우선적인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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