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해 넘기는 늑장 공시도 다반사… 깜깜이 인사·거수기 논란 여전

■ 정신 못차린 공공기관 이사회


"(해임된) 초대 감사님께서 공공기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난달 23일 공공기관인 부산대치과병원 이사회에서 한 이사가 해임된 전임 이사에 대해 평가한 발언이다. 공공기관의 속칭 '넘버2(2인자)'인 감사 자리가 얼마나 전문성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문제를 회의석상에서 지적하면서도 정작 이날 이사회는 의아한 결정을 내렸다. 후임 감사직 후보 7명이 모두 병원업무와 무관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추가 공모 없이 후보 가운데 한 명을 단일 후보로 교육부에 추천하기로 한 것이다. 단일 후보로 낙점된 A씨는 새누리당 선거판 등에 몸담았던 정객이었다. 사실상 낙하산 인사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문제 삼으며 개혁을 요구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 경영진은 이처럼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이달 들어 새롭게 공시된 주요 공공기관들의 연말연시 이사회 회의록을 들여다본 결과 밀실인사, 거수기식 의사결정, 늑장공시 등을 여전히 반복하는 곳들이 수두룩했다. 밀실인사 논란을 사는 곳은 부산대치과병원뿐만이 아니다. 전임 사장이 풍속업소 출입으로 불명예스럽게 낙마해 새 경영인을 찾아나선 한국관광공사, 임기가 만료된 비상임이사 선임에 나선 신용보증기금 등도 요식적인 공시로 '깜깜이 인사'를 자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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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의 경우 사장 후보 추천 권한을 가진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안을 지난해 12월24일 이사회에서 원안대로 의결했는데 임추위 구성내용은 물론이고 당시 이사회 참석자 발언조차도 '공시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두달여 전에 임추위 구성안을 사실상 내정해놓고서는 17일 임추위를 발족시켰다.

신보도 지난해 12월26일에 이사회를 열고 비상임이사 선임을 위한 임추위 구성을 의결했는데 정작 임추위원들의 명단 등은 공시하지 않기로 방침을 내렸다. 신보는 지난 2012년에도 당시 안택수 이사장이 1년 연임하는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 등을 사 임추위를 요식화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던 터다.

중요한 경영사항을 거의 일언반구 없이 일사천리로 의결시키는 거수기 논란도 공공기관들의 이사회에서 재연되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중국 희토류생산 보증 갱신, 남아공 유연탄 탐사, 국감 결과 보고 등 중요 사항들을 안건으로 올렸으나 참석자들은 특별한 의견 없이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중 남아공 유연탄 탐사건은 투자자산 손상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까지 당일 회의에서 소개됐지만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어물쩍 의사결정이 난 셈이다. 석유공사와 마사회 이사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석유공사는 최근 이사회에서 주요 해외사업건 등을 안건으로 올렸으나 거의 논의가 생략된 채 일사천리로 원안이 처리됐다. 마사회도 1월24일 이사회에서 임원보수, 단체협약, 번식마 도입 안건 등을 별다른 토론 없이 접수했다.

그나마 이 같은 이사회 회의록도 제때 공개되지 않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남부발전 등은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고서도 두달 가까이 공시를 미루다가 이달 초에서야 공시를 해 눈총을 샀다.

이는 실시간으로 주주들의 감시를 받으며 잘못할 경우 민·형사상 소송 압박을 받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기관들은 대체로 소수의 주무당국자의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되고 설혹 지적을 받더라도 강력한 사후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탓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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