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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엄청 바쁜데 외부 공익활동을 하겠다는 변호사가 있다면. 우리는 오케이입니다."
법무법인(로펌) 원의 윤기원(52ㆍ연수원 16기) 대표변호사는 다소 걱정스러운(?) 답을 꺼내 놓았다. 원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서다. 로펌의 대표가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대답이었지만, 뒤이어진 그의 말을 듣자니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변호사는 기업에서 활동하거나 로펌에서 일하거나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본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고 입을 뗀 그는 "그런 만큼 변호사들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사회에 대한 배려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속 변호사들이 외부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이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대외 이미지를 형성해 로펌의 '무형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윤 대표변호사는 " '원은 일도 잘하는데 공익도 신경 쓴다'는 이미지를 갖는다면 클라이언트의 호감을 살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원이라는 상품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웃음 섞인 주석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겠다는 변호사가 있다면 곤란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윤 대표변호사 본인도 공익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일반시민이 주축인 된 시민단체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의 대표로 16년 이상 활동해오고 있다. 또 20년 넘게 사학비리로 몸살을 앓다 최근 정상화된 상문고 동인학원의 새 정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역시 사학비리 문제가 있었던 충암고 출신인 윤 대표변호사는 "학생시절 목격했던 반(反)교육의 현장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영리와 공익의 동시 추구'는 윤 대표변호사가 로펌 대표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추구한 가치다. 지난 90년대 중반, 윤 대표변호사는 뜻이 맞는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 5명을 모아 "돈 벌 생각만 하지 말고 재미있게 일해보자"며 로펌을 만들었다. 이름도 색다르게 짓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서울대학교 안 법학과 부근에 있는 '연못'이었다. 법무법인 자하연(紫霞淵)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자하연은 원의 본류가 됐다. 지난 2008년 자하연ㆍ한빛ㆍ새길이 합쳐지며 출범한 원은 '가치와 뜻을 모은다(The one)'는 의미를 살려 이름을 붙였다. 3개의 로펌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공익과 영리의 균형'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구성원은 없었을까. 윤 대표변호사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같이 일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라고 잘라 말했다.
윤 대표변호사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다른 대형 로펌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로펌을 만들고 싶다"며 "공익을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익 얘기만 하나 싶어 다른 질문을 던져봤다. 최근 원은 소속 변호사 2명을 삼성가 유산소송에서 삼성 측 소송 대리인단에 포함시키며 시선을 모았다. 기업 인수합병(M&A)자문과 국제중재 등 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홍용호(43ㆍ연수원 24기) 변호사와 송무 전문가로 평가 받는 유선영(50ㆍ연수원 17기)변호사가 그들이다. 다른 로펌보다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원의 소속 변호사가 선임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표변호사는 "(이번 선임은) '대형 로펌만 일을 잘 한다'는 선입견이 깨진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인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 대형 로펌들이 많이 수임하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로펌의 유명도나 사무실의 크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변호사냐 아니냐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윤 대표변호사는 "중형 로펌이라도 실력 있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일단 큰 로펌만 찾는 클라이언트의 시각이 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형 로펌만 찾는 분위기를 꼬집은 윤 대표변호사의 지적은 로펌 대형화에 대한 걱정 섞인 시각으로 이어졌다. 윤 대표변호사는 "전문화의 필연적인 결과로 변호사의 수가 늘고 로펌 규모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로 인해 로펌 간 순위 다툼이 격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로펌 간 순위 다툼은 불필요한 비용 지출로 이어져 결국 수임료를 높인다"며 "그 비용이 클라이언트에 전가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표변호사는 현재 법조계 화두 중 하나인 로스쿨 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충고를 했다. 그는 "로스쿨 도입으로 배출되는 많은 법조인이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란 걱정은 예견된 것"이라며 그 이유로 한국과 미국의 상이한 법률문화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꼽았다. 윤 대표변호사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적 서비스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데 인색한 문화가 있다"며 "이런 문화 토대 위에 단순히 번호사의 공급만 늘린다고 법률 수요가 높아질 것이란 예측은 성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1960년 경기도 안성 ▦1984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2001년 법무법인 자하연 대표변호사 ▦2004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2009년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