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대담]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담= 김형기 산업부장 kkim@sed.co.kr<br>"'재벌, 돈밖에 모른다' 비난 자초 말아야"<br>'X파일' 오래 끌면 경제에 부담, 빨리 해결 됐으면<br>무차별적 M&A 막게 법적·제도적 보완책 필요<br>정부 기업환경 개선도 수요자입장서 생각해봐야


“지금은 경제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 힘을 모아야 할 재벌들이 ‘돈 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받을 행동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서울경제신문 창간 45주년을 맞아 재계의 수장인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흔쾌히 초대석에 앉았다. 강 회장은 “전통깊은 서울경제신문의 4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문을 연 후 최근의 두산가 형제간 갈등에 대해 “다툼이 커지면 경제계 전체가 욕을 먹을 수 있으니, 서둘러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같은 기간동안 국가적인 스캔들로 떠오른 속칭 ‘X파일(옛 안기부의 도청 및 도청내용)’과 관련해서도 “과거시대의 해묵은 문제가 불거져 당혹스럽다”며 “오래 끌면 경제에 부담이 되니만큼 조속하게 조사하고 마무리지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강 회장은 이밖에 “터무니없이 낮은 이자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는 그 돈 가지고 이 기업 저 기업 마구 사들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남이 멀쩡하게 잘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삼켜버려도 문제될 게 없는 세상이 됐다. 이건 탐욕일 뿐”이라며 무차별적인 적대적 M&A에 대해 적절한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이 많이 변했죠. 강 회장께서 요즘 가장 놀랍게 바라보는 기업환경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진짜 많이 변했어요. 최근 들었던 소식인데 일본에서 닷컴기업인 라이브도어를 만들어 큰 돈을 번 동경대 대학생이 대형방송사인 후지TV를 사냥하려고 시도했답디다. 깜짝 놀란 일본 기업들이 지금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어떤 기업이든 M&A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어요. 세계적으로 돈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은행돈을 싼 이자로 빌려서는 그 돈 가지고 남 잘 하는 회사를 삼켜도 거리낄 것이 없는 파격적인 세상이 됐지요. 이제 기업의 상도의는 사라지고, 탐욕만 커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딱 들어맞는 흐름은 아니지만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돌파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정부가 경제운용을 유연성 있는 방식으로 전환시켜야 해요. 또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해요. 이래야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요. 경제시스템도 바뀔 필요가 있어요. 특히 규제에 대한 법률 구조를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으로 전환해서 법에는 할 수 없는 사항만을 명시 및 규제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맞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시켜야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입니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과학기술이나 연구개발 투자는 정말 중요합니다. 요즘 불루오션, 불루오션 하는데 이게 모두 연구개발의 결과들이죠. 예전에는 독특한 상품이 하나 나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독자적인 영역을 유지했습니다만 최근에는 복제도 많이 하고, 따라붙는 기술도 많아서 한 품목으로 오랫동안 편하게 사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끊임없이 앞서가는 수 밖에 없어요. -까다로운 주제입니다만 최근 두산가의 형제 다툼이 그동안 개선되던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다시 악화시키는 양상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두산은 형제간에 우애가 좋은 가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실망이 커요. 최근 박용성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합디다. 그래서 다툼이 커지면 경제계 전체가 욕을 먹게 되니 서둘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지금 경제가 어렵습니다. 이런 때 ‘재벌들이 스스로 돈 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사서는 곤란하지요. -삼성그룹 및 중앙일보 고위층에 대한 옛 안기부의 도청테이프와 그 내용(‘X파일’ 사건)도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사실 최근에는 ‘이젠 정치자금 문제가 해결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엔 정치권에서 돈을 가져오라고 하면 거역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해묵은 문제가 불거져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도청은 국민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기왕 도청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으니 검찰이 철저히 진실을 규명해야겠지요. 다만 오래 끌면 경제에 부담이 되니만큼 조속하게 조사하고 마무리지었으면 합니다. -화제를 돌리지요. 사람들이 요즘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지만 고용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성장과 투자, 일자리 창출이 선순환구조를 이룰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기업들 투자가 고용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사업이나 영역에 대한 진출이 부진하기 때문입니다. 첨단업종과 R&D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니까 고용창출 효과가 미흡한 것이지요. 게다가 대기업은 투자를 확대하지만 이것이 중소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요. 투자확대가 고용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하려면 성장산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보호, 육성시켜야 합니다. 기업도 신규투자를 확대하고 부품ㆍ소재산업 국산화에 열심히 나서야겠지요. 더불어 중소기업들도 기술개발이나 생산성 향상에 몰두해 경쟁력을 높이면 점차 선순환의 물꼬가 트일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친기업정책’을 편다고 하는데도 여러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여전히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합니다. ▦그게 참 까다로운 문제예요. 시각의 차이도 좀 있고.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려면 일단 수요자인 기업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전경련에서 여러 번 건의했는데… 파급효과가 큰 핵심규제인 출자총액 제한, 수도권신증설 제약, 부채비율 200% 등을 완화해야 합니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기업의 자금조달 가용성을 약화시키면서 투자 등 장기필요자금의 조달을 제약하고 있어요. 그런데 글로벌 경영 환경은 그렇게 순진하게 진행되지 않거든요. 지금은 국가 단위의 경쟁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서비스산업을 통한 국가발전'을 제기했습니다. 고용 가능성이 높고, 국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마지막 황금 영역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해석됩니다만. ▦이 회장께서 제기한 방안에 매우 공감합니다. 관광, 물류 등 서비스산업은 차세대 성장동력이 확실합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간 균형발전의 효과도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요. 정부도 선진국이나 경쟁국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지원 등의 차별해소가 필요합니다. -전경련은 지난 2년간 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고, 앞으로는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실 계획입니까? ▦글쎄요. 지난 2년간 정부와 마찰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가치관을 수호한다는 일관된 원칙이 침해받지 않는 한에서는 전경련과 민간경제계가 정부정책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해 나갈 것입니다. 경제계의 주장만을 너무 강하게 내밀기 보다는 정부와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업의 입장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정부와 재계의 관계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기업 주변에선 요즘 전경련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 눈치만 본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회원사들 가운데 불만이 많은가 보죠. 허허허. 전경련은 변함없이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전경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우리나라 경제가 잘 되는 방향을 모색하여 경제계 의견으로서 개진하여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경련의 활동을 지켜 보면서 할 일을 하는가, 하지 않는지를 평가해 주기 바랍니다. -큰 이야기말고 작은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강 회장께서 취임하신 이후 재계의 단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고, 성과도 컸습니다. 앞으로 해결하고 싶은 숙제는 무엇입니까. ▦작은 이야기가 결토 아니네요. 처음도 재계 단합이고, 마지막도 재계 단합입니다. 모든 경제인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경제살리기에 동참할 때 진정한 의미의 단합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어요. 소위 4대그룹만의 문제는 아니고, 중견그룹이나 다른 모든 기업 및 회원들이 함께 협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경련은 회원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경제단체가 돼야 합니다. 임기동안 그 같은 목표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서울경제의 창간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전경련 1%클럽 나눔활동 주도 "삶의 현장찾기 실천 계속할 것" 강신호 전경련 회장의 동아제약 응접실에는 그가 수출역군으로서 정부로부터 받은 최고의 과학기술훈장인 창조장(創造章)이 자랑스럽게 비치돼 있다. "저기 파란 색 훈장은 나와 동아제약이 땀 흘려 개척한 결과물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자평하는 강 회장은 "기술개발만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며, (저 훈장은) 동아제약이 그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징표"라고 설명한다. 강신호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2001년에 시작한 '전경련 1%클럽' 활동도 강 회장이 주도했다. 이 활동은 회원사 스스로 경상이익의 1%를 사회공헌사업에 출연, 기금을 조성해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강 회장의 적극적인 독려에 힘입어 참여회원수가 160사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소외계층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영등포 지역의 무료의료기관인 요셉 의원과 주변 쪽방촌을 찾았으며, 올해는 남대문 지역 쪽방촌과 청량리의 밥퍼 급식소를 찾아 지역사회의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한 점심 배식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당시 배식 봉사활동을 마친 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과 반찬, 국을 떠주는 봉사활동을 옷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하면서 매일 매일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너무 놀랐다"며 "우리와 같은 봉사자가 그곳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은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직접 삶의 현장을 찾아 작은 실천이나마 계속 할 생각"이라며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는 일이 지속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희망을 키워 가는 일이 이어져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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