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사회적 갈등·양극화 등 '잠재적 위험' 치유책 마련해야"

[특별 인터뷰]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br>제조업 중심 경제구조 한단계 업그레이드 필요<br>북한등 큰 변수 없다면 5년내 선진국 진입가능



"지난 10년간 소득 불평등 증가, 지역 및 교육 격차, 중소기업 몰락 등 사회적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단계로 진행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화폐금융 전문가이자 한국 경제학계의 큰 어른인 박영철(71ㆍ사진)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석좌교수는 21일 서울경제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아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지금 덮여 있는 양극화 현상은 우리에게 잠재된 가장 큰 위험요인인데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한가지 처방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시적인 면에서 하나둘 챙겨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석좌교수는 또 "앞으로 G10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산업구조로 가져가야 한다"면서 "1960~1970년대에는 일본의 사례를 따라가면 됐지만 대표적으로 우리가 내세우는 신성장동력인 녹색산업의 경우 앞길을 전혀 알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 석좌교수는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흥망을 함께 겪어온 산 증인이다. 그는 한국경제의 원로답게 수 차례의 위기극복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속 시원히 제시했다. -과거 50년을 돌아보면 우리 경제가 참 많은 굴곡을 거쳐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개방경제에서 겪었던 첫 번째 큰 위기는 1972년 제1차 석유파동입니다. 다음이 1970년대 후반 제2차 석유파동과 함께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지요.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위기가 없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1972년에는 한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9,000만달러밖에 없던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가 뉴욕에 가서 2억달러를 빌려오기도 했지요.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이 너무 오만해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수출경쟁력이 생겨 외국으로부터의 자금동원이 쉬워지다 보니 방만하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외채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됐지요. 앞선 세 번의 위기들은 대외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국가와 다르게 위기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된 것이지요. -우리 국민이 이렇게 많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람들은 위기가 찾아오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하나로 뭉칩니다. 가계ㆍ기업ㆍ정부가 국가적 존립에 위협을 느끼면 애국심을 발휘해 완전히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지요. 참 신기한 우리만의 특징인데 이에 대해서는 외국 사람들의 시각도 동일합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운동은 실제 금액으로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외국에 우리나라가 여러 구조조정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준 사례입니다. 반면 그리스ㆍ포르투갈ㆍ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들은 서로 싸우다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외세의 지원으로 회복하게 됐지요. -위기별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제1차 석유파동 때는 정부가 과감하게 지출을 늘리고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발해 중화학공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했습니다. 수출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여러 부문에서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 중 성공한 것이 1980년대까지 한국을 먹여 살린 자동차ㆍ조선ㆍ기계 분야입니다. 다른 하나는, 석유절약운동을 통해 엄청나게 석유사용량을 줄인 것이 위기극복의 배경이 됐습니다. 두 번째 위기가 왔을 때는 정부의 긴축정책이 성공해 인플레이션을 막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율ㆍ임금이 안정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시작했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업ㆍ공기업ㆍ금융 구조조정을 착실히 했기 때문에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한국만이 가진 성공모델 요인을 규정한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가장 큰 것은 엄청난 교육열입니다. 즉 교육에 대한 투자지요. 또 북한과 맞서 있고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지리적 역학관계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접하게 되면 결국 우리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기에 국내 갈등을 조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부존자원이 하나도 없기에 성장을 위해 해외로 진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쌓아놓은 위치를 지키기 위한 '프라이드'도 한 요인입니다. -1990년대 위기를 불러온 정부의 패착은 무엇이었습니까. ▦무분별하게 자금이 들어오도록 금융시장을 개방한 것이 가장 큽니다. 다음이 기업의 방만한 투자,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통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절도 있게 풀었어야 하는데 자유와 개방을 하면서 규제가 필요함에도 모른척하고 지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고 외환위기를 맞게 됐지요.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도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투자의 효율성이 중요시될 뿐 아니라 투명성, 지배구조 개선, 사회적 책임 등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업은 정부와 유착됐었는데 그게 없어졌습니다. -이제 위기는 다 끝났다고 봐도 되는 건지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큰 위기는 오지 않겠지만 연속적으로 작은 위기가 올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저성장을 이어갈 것입니다. 또 중국이 성장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여러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큰 위기가 아니더라도 작은 위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지나 보면 별 문제가 아닌데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과정이 계속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우리나라 경제의 현수준을 평가해주십시오. 또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가 있습니다. 5년 내에 선진국으로 편입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만큼 정책면에서 절도 있는 나라도 드물고 대기업의 국제적인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됐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 변수 등의 큰 이변이 없다면 5년 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에서 3만달러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으로부터 준선진국 평가를 받는 것에서 '준'을 떼어낼 수 있겠지요. 다만 현재와 같은 안정된 정책을 유지한다는 가정에서입니다. -끝으로 후배들ㆍ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에 진출하는 것은 좋지만 뿌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합니다. 즉 한국 사람으로서 외국에 나가 최대한 활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주체성, 아이덴티티(identity)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으로 세계화를 해야지 무조건적인 세계화는 금물입니다. ◇약력 ▦1939년 대전 ▦1958년 서울고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1968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경제학박사 ▦1976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1984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8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1987년 청와대 경제수석 ▦1992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1997년 대통령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 위원 ▦2004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9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법 태스크포스(TF) 위원장 ▦현 고려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선진국서 네트워크 독점, 금융업 성장동력化 한계"
"금융업을 성장동력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은 앞으로 한계에 부닥칠 것입니다. 제조업은 잘 만들기만 하면 되지만 금융은 서비스 산업이어서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금융산업이 더 발전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우리 금융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지난 1992년 초대 금융연구원장을 맡은 뒤 6년간 재임했던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는 국내 경제학계에서 손꼽히는 화폐금융 분야의 권위자다. 금융산업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냉정한 진단에 대해 박 석좌교수는 조목조목 설명을 덧붙였다. 먼저 그는 "우리가 금융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국제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데 미국ㆍ유럽 등 몇몇 금융기관이 이를 독점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쌓아온 네트워크여서 일본ㆍ중국도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금융 업무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예술ㆍ역사 등의 분야에서 한계를 느끼게 돼 네트워크에 진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원인으로는 금융 서비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척도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신뢰를 바탕으로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JP모건ㆍ씨티뱅크와 같은 기업이 가진 믿음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1980년대만 해도 세계 10대 은행 중 4개를 일본이 차지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금융산업의 세계화가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석좌교수는 지난해 한국은행법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는 등 대학에 있으면서도 정부 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요즘 매일같이 고려대에 출근하는 그는 조만간 찰스 위폴로즈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와 공동 집필한 '동아시아에서의 화폐와 금융의 통합(Monetary & Financial Integration In East Asia-The Relevance of European Experience)'이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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