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행장의 낙마로 국민은행의 경영권 향배가 극도로 불투명해지면서 자칫 외국인들에 의한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노출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금융계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을 좌지우지하는 리딩뱅크이면서도 확실한 주인(지배주주)이 없고 외국인 지분율은 무려 77%(10일 기준)에 달하고 있어 경영상의 공백기를 틈타 소버린과 같은 기업사냥꾼들이 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현실성은 크게 떨어진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만 대내외 환경변화에 따른 자본이탈 가능성과 경영권의 잠재적 불안 등이 남아있어 지배.소유구조에 관한 확실한 `안전판'을 갖추지 못한 점이 우려스럽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 적대적 M&A 가능성은 낮아
지난 10일 현재 국민은행의 시가총액은 12조9천억원(순위 5위)으로 아무리 '큰손'이고 우호세력이 많은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지분확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설령 우호세력간 합종연횡을 통해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금융감독당국의 대주주 자격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악의적' 인수.합병이 허용될 가능성이 낮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은행업 분야 애널리스트는 "고위험.고수익을 노리는 M&A의 특성상 국민은행이 단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물인지도 미지수"라며 "지분이 분산돼있는 금융기관이 적대적 M&A 대상이 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자본은 4% 지분한도에 걸려 M&A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에 따라 현단계에서 국민은행의 지분구조는 특정 대주주에게 쏠림이 없이 `잘게, 쪼개진' 형태를 그대로 유지, 주주들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선진국의 리딩뱅크와 같이 주요주주들의 지분이 고르게 분산된 형태로 갈 것"이라며 "경영은 이사회 중심 체제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은행은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인 지분율 5%를 넘는 주주가 없고 최대주주(3.78%)인 ING생명은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자사주 지분 향배 주목
국민은행이 작년 12월5일 정부로부터 사들인 자사주 지분 8.92%는 한시적으로 나마 주주들간의 세력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지분은 자사주 관련 법규에 따라 6개월간의 의무보유 기간을 거쳐 2007년 6월5일까지 처분토록 돼있어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영주체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이 지분의 상당부분을 세계 유수의 은행에 매각하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김 행장의 연임이 무산된 상황이어서 국민은행 이사회가 기존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새로운 행장이 선임되면 결정될 사안이지만 특정 투자자에게 몰아주지 않고 분산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지분구조 "보완 필요" 지적
국내 리딩뱅크 역할을 맡고 있는 국민은행이 `CEO 리스크'로 소유.지배구조를둘러싼 불안감이 높아지자 금융계에서는 모종의 `안전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주들간에 분산된 소유구조와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라는 이상적인 경영모델을 갖추고는 있지만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외국자본 이탈 가능성, 중소주주들의 이합집산 우려 등 잠재적 불안요인이 남아있어 리딩뱅크로서의 기능을 맡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LG카드 사태 등 구조조정 현안이나 개인.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에서 리딩뱅크가 맡아야할 역할이 아직까지 크다”며 “국민은행이 갖는 국내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과 공공적 역할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공익적‘ 지분을 확보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당시 국민은행 등을 거명하며 민영화되는 공기업에 대한 지배구조의 적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작년 12월말 국민은행을 민영화한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세수확보에만 치중해 보유지분을 전량매각한 것은 성급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정태 미래에셋 애널리스트는 "국민은행이 갖는 공공성을 감안할 때 무조건 파는게 능사가 아니었다"며 "리딩뱅크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은행은 시장원리와 주주이익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당시 정부가 조금이라도 지분을 팔지 않았다면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국민은행 문제는 시장과 주주가 잘 알티?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