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연말에 밝혀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은 과학자의 정직성을 의심하지 않던 일반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오로지 진실과 정확성만을 위해 일한다는 과학자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됐다.
또한 최근 며칠 사이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논문 표절과 재탕(再湯) 의혹은 사회과학자들의 행태에도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잇단 논문표절 국민 신뢰잃어
특히 김 부총리가 “이런 식으로 검증하면 앞으로 교수 출신은 절대로 장관을 할 수 없다”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인 교수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으니, 일반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물론 학자들의 거짓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예를 들어 유전법칙을 밝혀냈던 멘델의 유명한 완두콩 실험이나 전자의 전하와 질량의 비(比)를 측정해 노벨상을 받은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에서도 데이터의 의도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 바 있다.
또한 지난 74년에는 흰쥐의 피부에 펜으로 색칠을 했던 윌리엄 서머린 사건이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일이 있으며, 수년 전에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던 벨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연구원의 나노트랜지스터 연구 논문이 모두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일도 있다. 그러기에 외국에서는 논문의 조작과 표절을 규제하는 법률과 기구가 이미 설치돼 있고 우리나라도 황우석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연구기관에서 연구 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이 지식인들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켜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대책은 논문이나 저술의 위조ㆍ변조ㆍ표절을 막는 데에는 일조(一助)를 하겠지만 단순히 조작이나 표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식인이 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처럼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개돼 있고 검색이 쉬운 시대에는 표절이나 변조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발각되면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된다. 황우석 박사는 교수직에서 쫓겨났고, 김 부총리는 곤욕을 치르고 부총리직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두 경우는 한국 지식인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경우는 학자들의 거짓말이 특정한 목적을 가진 권력과 야합하는 경우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스탈린 시대 소련의 농업생물학자 리센코(T.D. Lysenko)의 경우일 것이다. 리센코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반대하며 환경 조건을 바꿈으로써 생물의 유전성을 변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위 ‘리센코 학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스탈린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맞아떨어져 소위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공인받았다.
권력 야합땐 참담한 결과 초래
그 후 그의 이론은 실제로 소련의 농업 생산에 적용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소련의 농업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려 수많은 농민을 굶어죽게 했다. 이처럼 사이비 이론이 권력과 야합하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나마 리센코이론은 자연과학적으로 진위(眞僞)가 증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피해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더욱 위험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설익은 사회과학이론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이론은 쉽게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고, 사회 전체가 실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존경을 잃고 있는 것은 실력이 부족한 학자들이 자기도 충분히 이해 못하는 설익은 이론으로 한국 사회를 임의로 재단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분열을 초래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