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00세 시대의 그늘 노인자살] <2> 사각지대 농어촌

고령화 속도 더 빠른데 복지 취약… 자살률 도시보다 높아<br>정신보건 인프라 등 대도시보다 열악해<br>사소한 개인적 위기가 자살충동으로 이어져… 충남, 서울·울산의 2배<br>지자체 인력·예산 부족… 자살 예방사업도 한계

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의 생명사랑지킴이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마을의 주민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


38가구, 75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충남의 한 농촌. 평화로워 보이는 외견과 달리 이 마을에선 약 3년 동안 4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08년 거나하게 술이 취한 김모(62)씨가 창고로 들어가더니 음독을 했다. 유서는 없었다. 술만 마시면 반복적으로 내뱉던 "빚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다 빼앗겼다"는 말에서 그의 선택이 생활고로 인한 것임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이모(78) 할아버지도 농약을 들이켰다. 농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족들 간의 다툼이 잦아지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다는 주위의 증언들이 나왔다.


다음해에도 흉흉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퇴직한 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걱정에 다단계판매를 시작했던 정모(64)씨는 지속적인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 충동적으로 농약을 마셨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언젠가부터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자식들한테 폐 끼치지 않고 그렇게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말들이 노인들 사이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듬해 또 한 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손녀와 함께 근근이 살아가던 80세 할머니는 연락도 안 되는 며느리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곧 수급 대상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전긍긍하던 할머니는 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음독했다.

노인자살 문제가 대도시에 비해 농어촌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한다.

통계청의 2010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충남도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이 123.2명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농촌 비율이 높은 강원도 역시 117.9명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반면 대도시인 서울과 울산의 경우 각각 65.1명, 64.3명으로 자살률이 비교적 낮았다.

김도윤 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 자살예방팀장은 "정신보건 및 자살예방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농어촌을 방문하는데 고작 20~30가구 규모의 작은 마을에서도 최근 3~5년 음독자살 한 번 없는 곳이 없었다"고 전했다.


농어촌의 고령화 속도가 대도시에 비해 훨씬 빠르다는 것이 지역별 자살률 차이를 보이는 한 이유로 꼽힌다. 고령인구의 자살률은 연령이 많아질수록 더욱 가파르게 증가한다. 2010년 60대 노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52.7명 수준이지만 80세 이상으로 넘어가면 자살률이 123.3명까지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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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농어촌의 보건ㆍ복지 인프라가 서울 등 대도시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지난해 말 발간한 '지역사회 보건복지 자원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는 시군구 단위로 개설된 보건복지 인프라 수준이 노인자살률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공동 수행한 백석대ㆍ최명민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자 수가 유의미하게 높은 지역의 경우 지자체의 복지예산이 낮고 정신과 의원이나 보건센터 등 정신보건 인프라 수준도 다른 지역 대비 낮은 경향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광역단위 시도를 제외한 전국 229개 시군구의 지자체별 정신과 병의원 수와 자살률을 비교한 결과 지역사회에서 이용 가능한 정신과 병의원 수가 많을수록 자살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가 있는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낮았으며 센터의 설립과 역할수행 기한이 상대적으로 오래된 지역에서 자살률이 낮은 경향이 있었다.

복지 인프라도 자살률에 영향을 미쳤다. 지역사회복지관이 있는 지역이 없는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자살률을 보였다.

최 교수는 "대도시와 달리 농어촌 등 낙후된 지역에서는 시장논리상 사회안전망 등 인프라 구축이 훨씬 더딜 수밖에 없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사소한 개인적 위기도 자살충동이라는 위험으로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농어촌 지역의 노인자살이 위험 수준에 올라섰음에도 대다수의 마을은 여전히 국가ㆍ사회적 무관심에 방치되고 있다.

노인자살률 1위 충남도의 경우 올해부터야 비로소 예산ㆍ청양ㆍ홍성 등 자살률이 극히 높은 도내 6개 시군을 대상으로 자살예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음독자살을 막기 위해 농약보관함을 설치하고 고위험 노인들을 대상으로 웃음치료 등 정신보건 사업을 실시하지만 시군 내 모든 마을이 대상은 아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에 지역 내에서도 2~3개 마을을 선별해 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김도윤 팀장은 "충남의 경우 계룡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살률이 높다"며 "다른 지역의 자살률 역시 위험수준에 올랐지만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는 상대적으로 고위험 지역을 우선 돌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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