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초고유가 시대] 산업현장에서는

"경영계획 세워봤자…" 유화업계 감산 속출<br>항공·해운-기름값 아끼려 기내식 무게 줄이고 정속운항<br>자동차-내수·수출 감소에 플라스틱제품 값 올라 '한숨'<br>전자·IT-직접 피해 아직 없지만 가전등 수요줄까 걱정


“에너지 비용 절감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은 9일 사내 메시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회사가 최악의 경영환경에 노출됐다는 점을 공지했다. 유가에 연동되는 나프타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마당에 마지막 보루는 공장 운영에 드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전사적인 에너지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더욱 다잡아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비용을 10% 줄인다는 공장 운영 효율화 작전을 시작했다. 고 사장은 “에너지 비용 절감은 실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모든 서류를 종이 1장에 담으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비용 절감을 강조했다. ◇유화업체들 “경영계획 의미 없어진 지 오래”=이날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국제유가 상승에 연동해 톤당 1,160달러로 하루 사이 70여달러나 올랐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는 원유대급 수단으로 120일짜리 유산스를 쓰는데 유가가 단기적으로 오르면 달러화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면서 “최근 외화부채가 거의 1.5배나 늘어 재무 쪽 부서는 난리가 났다”고 전했다. 자금흐름을 책임지는 부서에서는 최근 전개되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유가가 급등하자 ‘깊은 상처의 고통을 참아보려는 거친 숨소리’가 산업현장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원유 트레이딩 담당 직원들은 지난 연휴 때 회사에 나와 유가 동향과 수급물량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면서 “트레이딩 쪽과 재무 쪽 부서원들은 대부분 지난 8일부터 철야근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SK에너지는 이날 비상경영계획을 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올해 평균 유가를 800~900달러 선으로 예상하고 작성한 경영계획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면서 “고유가로 석유제품 수요마저 크게 줄어 공장가동률, 원유도입 물량, 판매목표 등을 모두 다시 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유화업계는 나프타 가격이 톤당 1,000달러를 넘긴 지난달부터 이미 ‘바짝 엎드린 채 숨만 쉬는’ 양상이다. 나프타가 1,200달러를 돌파하면 감산 및 가동중단을 단행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그 이후는 사실상 구조조정기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시황이 좋지 않은 파라자일렌(PX)ㆍ스티렌모노머(SM) 등 방향족 계열 공정은 이미 SK에너지ㆍGS칼텍스ㆍ삼성석유화학 등 대형사들도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에틸렌과 프로필렌도 향후 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항공업계 “기내식 무게도 줄여야 할 판”=지난주 말 해외출장 길에 나섰던 김모(39)씨는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해산물 요리는 다 떨어졌으니 다른 메뉴를 드시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이날 이 비행기에서는 약 3분의1가량의 여행객이 원하지 않는 메뉴를 선택해야 했다. 고유가로 한 방울의 연료라도 아껴야 하는 항공사들은 기내식마저도 꼭 필요한 양만 싣기 시작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승객들의 기호가 특정 메뉴에 갑자기 쏠린 점도 있지만 기내식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품목의 물량을 예전보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물이 턱밑까지 차서 숨도 못 쉴 지경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운항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운휴 및 감편을 확대하는 추세다. 해운사들은 아예 전쟁 중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벙커C유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속운행을 하다 보니 전세계 고객들이 운송지연에 따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며 “선박스케줄을 담당하는 부서는 밀려드는 고객들의 불만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린다”고 전했다. 유류할증변동이 잘 반영되지 않는 미주~태평양 노선은 운항횟수가 줄어들다 보니 수요를 맞추기 힘든 상황. 이 때문에 경쟁사의 운항스케줄을 파악해 고객에게 안내하는 경우도 많다. 값싼 벙커C유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또 다른 해운사 관계자는 “연료 구매 담당자들은 전세계 항구의 벙커C유 가격을 파악해 10원이라도 더 싼 곳에서 선박에 기름을 넣기 위해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로 가격정보를 확인한다”며 “첩보 수준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전사적인 시스템과 인적 네트워크가 총동원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자동차업계도 ‘시계제로’=유가 폭등으로 속병이 든 대표적인 곳이 자동차업종. 요즘 같은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내수와 수출을 막론하고 큰 폭의 수요감소가 나타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유가에서는 솔직히 차를 사기는커녕 집에 있는 차도 팔아야 하는 분위기 아니냐”면서 “유가동향과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판매량을 집중 분석해 미래의 유가 수준별 수요를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업계는 이밖에 원가 상승 압력도 크게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유가 상승분이 반영돼 플라스틱 제품 가격이 오를 경우 철강 다음으로 중요한 차량 내ㆍ외장재 가격이 인상되는 셈이라 자동차 제조원가에 상당한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ㆍIT “물가상승과 내수 경기 하락 우려”=전자업계와 정보기술(IT)업계는 유가 폭등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아직까지 없지만 고유가-물가상승-내수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전자업체들은 통상 9월 새 학기 시즌에 맞춰 7~8월에 컴퓨터나 가전 등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재 분위기라면 예년과 같은 매출을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지만 유가가 더 불안해지면 시장의 구매력에 문제가 생기므로 우리도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 새 학기 시즌에 맞춰 7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정거래가 인상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국내 내수는 물론 미국 등의 내수까지 어려워질 경우 가격 인상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운송수단을 항공에 의존하고 있어 고유가로 인한 간접적인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자업체들은 특히 협력업체들의 원가 부담 공유 요청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LG전자는 지난달에 이미 물류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며 삼성전자 등도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중소 납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요구와 이에 따른 파열음에서 드러났듯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협력업체와의 마찰이 계속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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