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한옥과 한국인DNA

심은주 건국대 실내건축설계학과 교수


한글·한식·한복·한옥….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에 한(韓) 자를 붙이면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외국여행 중에도 한식당을 찾는 우리 모습을 보면 이렇게 '韓' 자가 붙어 있는 것들이 유전자 속에 얼마나 깊이 녹아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이나 한식과 달리 한복은 결혼식 때나 입어보는 특별한 의상이 됐고 한옥 또한 불과 몇 십년 만에 우리의 공간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관광의 대상이자 비일상성의 공간으로 변질했다.

전통이란 생명체와 같아서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하는 진행형의 개념인데 우리는 단절과 급성장 속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불행히도 경제성·실용성 등을 이유로 한옥과의 거리는 좁혀지기 어려울 만큼 멀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옥에서의 삶을 한 번쯤 꿈꾸는 것을 보면 전통 공간의 DNA가 우리 몸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가 보다.


물론 다른 나라의 공간디자인 요소들이 한국적인 것으로 오역돼 적용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차경(借景·정원 밖의 경치를 취해 정원 내의 경치와 어울리게 하는 조경)의 경우 화려한 창살과 중첩돼 자연경관을 조망하는 중국이나 경관을 조작하고 재단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의 그것은 환경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개념까지도 포함한다. 예컨대 전통공간인 '산집'의 경우 환경과 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디자인으로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우리 삶의 참맛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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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전통 공간문화 유전자의 회복을 위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등과 함께 한국적 생활문화공간의 우수사례들을 발굴하는 사업에 나섰다. 이러한 사례들의 확산을 통해 한국적 공간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이 키워지기를 기대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태극기는 상자에 깨끗하게 보관해 뒀다가 국경일에나 잠시 사용하고 다시 장롱 속 깊이 모셔두는 존재로 알고 자랐다. 그러나 외국 유학 중에 잠시 방문한 한국은 한창 2002년 월드컵 열기의 한복판에 있었고 경건함의 대명사였던 태극기를 목이나 허리에 두르고 얼굴에 그리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영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국기 유니온잭이 최고의 디자인 아이템이자 관광상품이 된 것은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거리를 좁혔기 때문이다. 한국적 공간을 오늘의 기술과 사람에 맞춰 재현하는 과정에서 변화와 변형은 당연한 것이기에 보존·복원과는 구분해 창의성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삼성경제연구소의 국가브랜드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현대문화 지수는 8위인 반면 전통문화는 29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공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한옥을 재사용하거나 실용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과감한 변형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과거와 현재의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연결·진화를 통해 함께 살아 숨쉬는 한국적인 공간문화 유전자로 뿌리내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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