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의 기업 합병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스팩은 우량 비상장기업을 우회상장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페이퍼컴퍼니로 그동안 상장 후 인수합병을 결의하기까지 평균 1년8개월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이 기간이 한 달까지 줄었다. 특히 지난 2010~2011년 증시에 상장됐던 '1세대 스팩'의 절반 이상이 합병 대상기업을 찾지 못한 채 상장폐지됐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전문가들은 1세대 스팩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팩 합병에 대한 증권사의 능력이 향상됐고 스팩을 바라보는 기업과 투자자의 인식이 개선된 점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케이비제2호 스팩은 30일 보안솔루션업체인 케이사인을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가액은 2,200원, 합병비율은 1대9.35다. 케이사인은 데이터베이스(DB) 암호화 시장 국내 1위 업체로 지난해 매출액 207억원, 영업이익 54억원을 기록한 알짜 비상장회사다.
이번 합병 결정이 눈에 띄는 것은 이전 스팩들에 비해 스팩 합병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비상장회사를 흡수합병한 스팩들은 상장 이후 평균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스펙 1세대로 2010년 3월에 상장됐던 현대증권1호 스팩은 삼기오토모티브를 흡수합병하기까지 1년7개월이 걸렸고 한일진공기계를 흡수합병한 키움스팩1호는 2년6개월이 소요됐다. 지난해 선테이토즈와 알서포트를 각각 흡수합병하며 2세대 스팩 붐을 일으켰던 하나그린스팩과 케이비1호 스팩도 증시에 상장된 것은 2010년 하반기였다. 이 밖에 2010년 이후 코스닥시장 상장 후 합병 대상기업을 찾은 스팩은 대개 1년4개월~2년6개월 정도 걸렸다.
반면 KB2호스팩이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것은 4월28일로 케이사인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설립일 기준으로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28일 IHQ의 계열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한 '우리스팩2호'도 비슷한 경우다. 우리스팩2호는 지난해 11월21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6개월 만에 국내 K팝 4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사 가운데 하나를 흡수합병했다. 특히 2010~2011년 기업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증시에 상장됐던 1세대 스팩 23곳 중 절반이 넘는 13곳이 아예 해당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폐지됐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전문가들은 최근 스팩의 합병 속도가 빨라진 배경으로 증권사들의 관련 노하우가 향상된 점을 꼽는다. 1세대 스팩의 실패를 겪으면서 합병 대상기업의 풀(pool)이 형성됐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1세대 스팩이 예상했던 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일종의 우량 비상장기업군이 형성됐다"면서 "이 풀 안에 있는 기업이 승낙만 하면 흡수합병 결정은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스팩이 공모형태를 취하고 있는 만큼 설립 이전부터 합병 대상기업을 정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아닌 산업군을 형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우회상장인 스펙 합병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의 인식이 개선된 점도 한 요인이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엔 우회상장 하면 뭔가 기업에 흠이 있을 것이란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선데이토즈와 알서포트 등의 주가가 스팩 합병 이후 크게 오르며 성공 사례로 소개되면서 투자자나 상장을 생각 중인 기업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스팩 합병 대상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평가가 없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팩 합병 대상기업은 주로 과거 실적보다 미래 성장성이 더욱 기대되는 곳들로 그동안에는 합병을 하려면 과거 실적도 고려해야만 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부터 밸류에이션 평가제도가 사라지면서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상기업을 물색하기 시작한 점도 스팩 합병 속도를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