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찾는 금융권] 낡은틀 부수고 새시스템 구축 모색
'창조적 파괴는 가능한가.'
20세기 초반의 슘페터라는 경제학자는 "경제발전과 사회변동은 파괴와 혁신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과거의 낡은 틀을 깨고 그 위에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를 만드는 이른바 '창조적 파괴'를 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개방과 기술혁신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파괴'가 세계경제의 핵심 화두로, 또 기업의 생존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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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신용금고
◇ 여신전문금융사
과연 국내 금융기관들도 올해 '창조적 파괴'를 이뤄낼 수 있을까.
특히 금융산업과 기업의 발전을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혁신과 파괴가 이뤄진 종금사와 금고, 신협 등 비은행금융기관과 캐피탈ㆍ리스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이 과거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를 창조해 낼 수 있을까. 그들의 부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1월29일 '2001년 금융ㆍ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1,2차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은행 11개를 포함, 전체 금융기관의 39.4%에 해당하는 303개의 금융기관을 정리했다"며 "구조조정이란 생성ㆍ발전ㆍ소멸하는 생명력 있는 유기적 조직인 기업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 벌이는 끊임없는 자기조정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구조조정은 한번만 하고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힘겨운 작업이란 것이다.
지난해 종금사와 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금융기관과 할부ㆍ리스사 등 여신전문금융사들은 금융 구조조정의 유탄에 맞아 큰 타격을 입은 한 해였다.
2000년 한해 동안 사라진 금융기관은 156개, 이 중 신협 113개, 금고 27개, 종금사 4개 등으로 퇴출 금융기관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신설된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또 여전사 중 캐피탈로 이름을 바꾼 몇몇 할부사만 정상적인 영업을 할 뿐 나머지 할부사들과 리스사들은 아직까지 개점 휴업 상태다.
정부는 올 초 2금융권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올해도 수백 개의 신협과 수십 개의 금고 그리고 몇 개의 종금사가 문을 닫을지 모르는 힘든 상황이 예고돼 있다.
연말쯤에는 서너개 종금사와 100개 안팎의 금고, 1,000개가 약간 넘는 신협 만이 살아남을 지 모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금융산업을 국가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회사의 전문화와 대형화를 이룬 후 그 위에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을 정착시켜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는 튼튼한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선진 경영지배구조와 성과 중심의 경영문화 정착 ▦리스크 관리체제의 과학화 ▦여신관행 선진화 ▦금융의 디지털화 촉진 등 소프트웨어 차원의 개혁을 올해의 핵심 과제로 실천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큰 타격을 입은 종금과 신용금고, 신협 등 2금융권에 대한 발전계획을 제시했다.
일차적으로 종금사는 기업금융 전문회사로 발전시켜 기업자금중개시장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고 신용금고는 떨어진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일단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배구조를 개선해 지역밀착형 서민금융전담 금융기관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또 1,300여개 신협과 자체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리스사는 올해부터 체계화된 퇴출 시스템을 마련해 크고 튼튼한 회사들로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는 순자본비율을 기준으로 적기시정조치를 내리고 여신전문금융회사인 리스사에 대해서도 적기시정조치를 도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개별 업종의 규모와 경영능력에 맞는 특정업무를 전담하고 지역 밀착화로 승부를 걸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이 부실화 될 경우, 더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적기시정조치 기준에 따라 자산부채이전방식(P&A) 등을 통해 퇴출시킨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폐허 속의 장미= 최근 미국의 금융지주회사인 플리트보스턴 파이낸셜이 조사한 2000년도 '창조적 파괴'지수 순위에서 한국이 10위를 차지했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 성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금융기관의 창조적 파괴 지수를 매긴다면 덩치가 작고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비은행금융기관과 여전사들이 높은 순위에 오를 것이다.
절망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이듯 금융 구조조정은 폐허 속에서 한 떨기 꽃이 피어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승호기자
김민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