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터넷라이프] '네티즌의 힘' 세상을 바꾼다

5년전, 네티즌은 여전히 밤에 잠은 안자고 PC통신에 몰두하는 이상한 족속들이었다. 5년후인 2000년 오늘, 어느새 네티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파워그룹으로 자리잡았다.일부 극단론자들은 『대한민국은 이미 네티즌 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네티즌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2005년이 되면 네티즌이라는 단어는 다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네티즌이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네티즌의, 네티즌에 의한, 네티즌을 위한... 지난달 24일 총선시민연대가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한 시각, 각 언론사의 간부회의에서는 이 명단을 지면에 실을 것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파급 효과로 보아 보통 사안이 아님을 직감한 일부에서는 명단공개를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누군가가 『신문에 안 나도 인터넷에 올라가면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대부분이 이에 수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총선시민연대의 홈페이지는 수만명의 지지 방문객으로 연일 들끓었다. 총선시민연대측도 『명단공개 전부터 8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인 네티즌의 반응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네티즌이 정치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은 있어도 네티즌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는 말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정치인의 인기를 주가로 나타내는 사이트 포스닥(WWW.POSDAQ.COM)은 정치인들 사이에도 화제다. 『축하해요 ○○○의원. 오늘 상한갑디다』라는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민감하다. 일부 정치인들은 포스닥의 주가 관리팀을 따로 만들어 운영할 정도. 의원 보좌관 P씨는 『주가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네티즌의 인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늘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31일 한나라당의 홈페이지가 해킹당한 사건도 사이버 정치가 이미 자리잡았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수년전 같으면 『누가 장난쳤겠지』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여권의 조직적 음모』라고 한나라당이 펄쩍 뛴 것은 사이버 공간의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네티즌의 비위를 거스르고 살아남는 기업은 없다. 증권 사이트 팍스넷의 텔슨정보통신 동호회는 최근 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 뭉치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은 회사의 주가관리 부실 등 평소 불만 사항을 단단히 따져 물을 작정이다. 메디다스의 게시판도 회사측의 한컴 주식 헐값 매도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온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안티두루넷·안티드림라인 등 항의 사이트로 이어졌다. 이들 안티(ANTI) 사이트들은 단순한 항의나 불만을 쏟아내는 공간에서 직접 압력을 가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지난달에는 초고속 인터넷 품질시연회를 통해 접속속도 순위를 발표, 관련 회사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일부 기업들은 자사의 이름에 안티를 붙인 도메인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기도 한다. 아예 반란의 근거지를 없애겠다는 속셈이다. 제품사용 소감을 적어 올리는 엔토크(WWW.ENTALK.CO.KR)라는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각 제품별로 적나라한 비판과 분석이 쏟아진다. 그동안 「최상의 음질로 만족을 드리는...」따위의 홍보물 말고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었던 소비자들에게는 신선한 정보가 된다. 게시판에 쏟아진 불만을 일고나면 열었던 지갑도 슬며시 닫힌다. 삼성물산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삼성몰(WWW.SAMSUNGMALL.CO.KR)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답변하는 일만 전담하는 직원을 두고 있을 정도로 네티즌은 기업들 사이에서 무서운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 이슈의 근원 지난달 성(性)대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군복무 가산점에 대한 문제도 사실은 한 네티즌이 모 신문사에 이메일로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3억원의 현상금을 걸고 도메인 공모에 나섰던 닉스는 당선자가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달여 동안 네티즌의 비난 공세에 시달리다가 결국 3억원을 공익 성금으로 내놓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네티즌들의 근거없는 횡포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네티즌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지난달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도 네티즌들에게 꼬투리를 잡혀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등록 취소로 주인이 없어진 고가(高價) 도메인들을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과정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험 등록을 했다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삭제하지 않는 바람에「내부 비리가 아니냐」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 센터측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될 듯 하자 십여개의 도메인 관련 동호회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일일히 해명과 사과문을 올렸다. 특히 이번에는 사건 발생 하룻만에 안티사이트(WWW.ANTIKRNIC.COM)가 만들어져 네티즌들의 대응력이 갈수록 신속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현경·이승연·이승엽 등 일련의 사건에서는 법의 잣대보다 네티즌의 여론이 일으키는 파급 효과가 훨씬 커 「네티즌은 제2의 사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권력기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린다. 자유로운 여론 형성이라는 장점과 일방적인 여론몰이라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네티즌들은 이미 세상을 「바꾸는」 정도를 넘어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진우기자MALLIA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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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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