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내년 예산안 357조 확정] 살림 어렵다면서 '복지 대못질'… 3년후 의무지출이 예산 절반

집권중 복지지출 年 7% 증가<br>SOC 등은 최대 5.7% 삭감… 연구개발 예산도 목표치 낮춰<br>국가재정·경제에 치명타 우려… 증세 힘들면 공약 구조조정을


"재정건전성은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고위 경제관료들이 공개석상에서 습관처럼 읊어온 발언이다. 그대로라면 정부 예산편성의 제1원칙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억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26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과 5년간의 중기재정계획에서 재정건전성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복지사업 지출 등이 대폭 증액되는 탓이다.


사실 정부도 지금 복지를 늘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내심 인정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25일 내년도 예산안 자료를 통해 "재정수입 감소만 고려할 경우 재정지출 증가율을 대폭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다. 이는 경기부진으로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데다 대안으로 자산매각 등을 통해 끌어 쓸 수 있는 세외수입 규모도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외수입은 현 정부 임기 5년간 연평균 4.0%씩 축소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나마 정부는 국세수입이 임기 5년 중 평균 6.5%씩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경기불안ㆍ조세저항 등을 감안하면 직접적 증세 없이 간접적 세수확충만으로 이 같은 전망이 달성될지 자신하기 힘들다.


살림이 어렵자 정부는 당장 지역경제나 기업투자에 민감한 영향을 주는 예산까지도 줄이는 형국이다.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의 경우 임기 내내 연평균 5.7%나 삭감하기로 했고 산업예산(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도 올해부터 5년간 평균 3.9%씩 깎아내겠다는 게 중장기재정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심지어 성장잠재력을 견인할 연구개발(R&D)사업비도 억제됐다. 기존 중기재정계획에서 R&D예산은 올해 16조9,000억원인 지출규모를 오는 2016년 19조5,000억원까지 늘리기로 돼 있었으나 새 계획에서는 2016년 지출규모가 19조1,000억원으로 후퇴됐다. 경기를 살려야 할 판국인데도 오히려 경기반영 효과가 있는 투자 관련 지출은 구조조정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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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복지예산은 현 정부 임기 내내 연평균 7.0%, 문화예산(문화ㆍ체육ㆍ관광)은 연평균 11.7%나 증액된다. 정부가 계획한 5년간 재정지출 총액 증가율이 연평균 3.5%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증액이다.

재정사정이 어렵다면서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은 나라살림에 대못을 박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재정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실제로 이번 재정계획안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3년 뒤에는 정부 재정지출 중 의무지출 비중이 금단의 벽인 50%를 넘어선다. 의무지출이란 법률에 따라 정부가 반드시 써야 하는 재정비용인데 상당수가 복지사업용이다. 관련 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줄이고 싶어도 함부로 줄일 수 없다.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정책자문위원회 소속의 한 경제학자는 "정부가 SOC를 줄이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게 예산안의 방향인데 사실 국가재정 건전성에 있어서는 SOC보다 복지가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가 SOC보다 더 위험한 이유에 대해 "SOC는 대체로 일정 건설기간만 마치면 재정지출이 마무리되고 지출비용 중 일부는 완공 후 사용요금 등을 받아 회수할 수 있다"며 "그에 비해 복지는 시작하면 끝나지 않고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되며 한번 나간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공약을 최소한으로 반영하거나 내년 이후로 미뤘다는 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날 임기 내 복지공약 달성을 재차 약속한 만큼 추가적인 공약 구조조정의 길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공약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고육책은 증세밖에 없다. 하지만 소득세 증세는 올해 정부 세법개정안 과정에서 역풍을 맞아 대거 후퇴했고 법인세 증세는 기업투자 활성화 정책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감행하기 어렵다. 결국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 증세 카드 등이 남게 되는데 일본 정부 등의 최근 사례로 볼 때 부가세 인상은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만큼 현 정부가 단행할 가능성이 아직 높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의 한 간부는 "증세와 공약 축소 모두 쉽지 않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것은 공약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공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분을 찾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마련한다면 출구전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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