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감사는 부업" 고급인력 외면

[벼랑끝 내몰린 회계감사] <중> '직업모럴'이 부족하다<br>"수수료 턱없이 적고 리스크만 떠안아" 외부감사 경험없는 1~2년차만 배치<br>고유업무보다 돈되는 컨설팅 더 치중 "영수증 숨기기 급급 기업태도도 문제"

“외부감사는 경험이 없는 1~2년차가 주로 나가고 연차가 높은 고급인력은 컨설팅 쪽으로 배치한다.” (대형 회계법인의 중견 회계사 L씨ㆍ파트너) 한마디로 돈 되는 곳에 능력 있는 사람을 배치시킨다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위험은 높고 생색은 나지 않는 회계감사업무를 가급적 피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L씨는 최근 분식회계 파문과 관련해서도 “원칙적으로 직업적 자존심을 걸고 밝혀냈어야 하는 사안이지만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짧은 기간 동안 분식을 적발할) 실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받는 만큼 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감사업무는 부업’= 회계법인들이 회계감사보다는 컨설팅 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수료 수입. 한 회계사는 “자산이 1,000억원 미만인 중소형사는 2주일 정도면 분식을 다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3일치 비용밖에 청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1,000원어치 일거리에 대해 100원만 받고 있다는 것. 공인회계사가 급증하면서 덤핑수주 경쟁이 이어지다 보니 정당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회계법인 취재과정에서 만난 김모(회계사)씨는 “회계사 초임 연봉은 평균 3,000만원 수준이다. 이 액수가 벌써 몇 년째 동결됐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회계사들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요구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항변이다. ◇‘회계업무’를 포기하는 회계사들이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기업의 부정을 감시하고 적발하겠다는 회계사 본연의 업무에 매달리는 회계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 회계사는 “지난 4월 의견거절을 받은 코스닥기업의 직원과 주주들이 회계사에게 몰려가 압박과 반강제로 ‘적정’ 의견을 받았다가 회계법인이 다시 ‘의견거절’로 뒤집어 퇴출된 일도 있다”며 “소형 회계법인은 부정적인 감사의견을 내기가 무섭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일부 회계사들은 아예 음식점ㆍ슈퍼마켓 등의 회계장부를 써주고 세금문제나 상담해주고 있다”며 “기업회계감사 같은 골치 아픈 일보다는 적게 먹고 살더라도 맘 편한 게 최고라는 회계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10명의 경력직 공인회계사를 모집하는 데 삼일ㆍ영화ㆍ안건 등 대형 법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계사 등 177명의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 연봉이 3,000만~5,000만원 깎여도 위험이 큰 기업감사는 싫다는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업도 경영파트너로 인정해야= 우리나라 회계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못하는 데는 기업의 몫도 상당히 크다. 심지어 회계사들이 기업감사를 나가도 관련 자료 하나 받아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한 회계사는 “어음이 어떻게 발행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현금도 확인이 안된다”며 “작은 회사는 백지어음이 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확인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회계감사에 대해 ‘바람직한 경영을 위한 쓰디쓴 보약’으로 여기지 않는 한 자료 하나, 영수증 한 장 내보이지 않으려고 숨바꼭질을 하는 일들은 끊이지 않는다.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중견기업의 Y대표는 “재무제표에 따라 주주나 은행들이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기 때문에 결산 때만 되면 회계사와 의견충돌이 잦다”며 “회사규모가 작다 보니 영업이익과 순익을 적자에서 흑자로 돌릴 수 있는 분식에 대한 유혹이 적지않다”고 실토했다.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분식회계에 대한 유혹을 받기 마련이라는 일종의 양심고백이다. Y대표는 또 “솔직히 말해 분식회계 문제는 기업으로부터 시작된다”며 “회사가 분식을 작정하면 회계법인이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금 다 내고 장사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분식회계는 끊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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