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성장 가능…환율·선거등 변수"지난해 우리경제는 어느때보다 어려운 한해였다. 미ㆍ일의 경기침체에서 시작된 외풍은 너무 가혹했다. 우리 성장원동력인 수출은 뒷걸음질했으며 경제성장률은 2%대로 곤두박칠쳤다.
벤처신화는 붕괴됐으며 금융권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IMF에서 조기 졸업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서울경제신문은 2002년 새해를 맞아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를 초청, 새해 경제전망과 과제에 대해 진단해보는 신년대담을 마련했다.
이번 대담에서 강봉균 원장은 "상반기까지 적극적인 내수진작을 통해 수출감소의 충격을 완화한다면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높은 4%내외의 성장이 가능하다"며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제 교수는 "지난해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환율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금리정책은 환율과의 관계를 유념하며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되 팽창 중심의 재정정책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윤제 교수= 먼저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부터 하는 것이 맞는 순서인 것 같습니다.
▦ 강봉균 원장= 미국경제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경제 회복시점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중반 이후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미국경제의 회복에 대해서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가계수지 적자가 많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테러 전쟁 조기 종결 등에 따라 미국의 소비 심리 위축은 올해 거의 해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조 교수= 소비는 자산시장이 중요한데 9ㆍ11 테러 사태 이후 주가움직임으로 볼 때 2ㆍ4분기 이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미국경제의 불확실성 중 하나가 경상수지 문제인데 경상수지가 좋아지기 위해 달러 약세가 가능해야 하지만 일본 엔화약세 문제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올해 미국경제는 지난해보다 크게 좋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나 유럽쪽도 1%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2ㆍ4분기를 기점으로 회복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침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 강 원장= 중반 이후 세계경제가 살아난다고 보면 국내 경제는 올해 중반까지 내수경기진작을 통해 수출감소의 충격을 완화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올해도 상반기까지는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경기를 지탱해줄 것이고 하반기 들어서 수출증가와 이에 따른 설비투자 증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설비투자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는 급속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반이후 수출이 회복되면 설비투자도 8%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수출 역시 물량기준으로 하반기에 10%내외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률은 지난해 2.7%에서 4% 내외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가는 세계적인 유가안정 추세에다 임금안정 등의 국내적인 요인 등으로 소비자물가 기준 2.6%내외 상승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를 넘는 수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물가불안은 없다고 예상됩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해 내수진작정책을 소극적으로 펼칠 필요는 없습니다. 경상수지 흑자는 40억 달러로 축소될 전망이지만 기본적으로 흑자기조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점 역시 적극적인 내수 진작 추진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 조 교수= 올해 국내 경제전망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ㆍ유럽 등을 포함한 세계경제는 하향 전망이 예측되지만 우리 경제는 지난해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70년대 이후부터 국내 경제의 저점과 고점 사이클은 17개월정도 되는데 고점이 지난 2000년 8월에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상반기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합니다.
지난해보다 경제성장률도 좋아지고 물가도 안정될 것입니다. 다만 환율이 변수입니다. 환율에 대해서는 현재 두가지 변수가 있는데 먼저 엔화 하락에 따라 원화도 함께 절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엔ㆍ달러 환율이 140엔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요인으로는 지난해 11월 이후 외국자본유입이 늘어나고 있고 올해에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결국 환율이 이 두요인 중 어느 영향을 많이 받느냐가 관건입니다. 외환시장에서 보면 절상 요인이 있지만 일본과의 수출 경쟁력을 감안해서는 절하 압력이 있을 것입니다. 수출의 경우 세계경기나 환율 등을 감안하면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본 엔화의 절하가 가속화되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이나 물가 안정은 나아질 것입니다. 설비투자는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강 원장= 제조업분야에서 설비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만 정보화나 물류관련 투자는 경제가 회복되면서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 조 교수= 지난해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가 견실하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수출이 경제성장을 이끌어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내수가 얼마나 견실하게 버텨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주식ㆍ부동산 등 개인 자산시장을 돌아볼 때 내수소비 전망은 괜찮은 편입니다.
▦ 강 원장= 민간소비가 지난해 2.8% 증가에서 올해 3.7% 정도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GDP 증가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셈입니다. 국민들의 자산가격 상승과 금융회사들의 가계신용이 원활히 늘어나고 있는 점, 그리고 월드컵이라는 이벤트 등을 감안할 때 민간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 조 교수= 요약해보자면 세계경제보다는 우리나라가 전망이 밝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지난해보다 나아지는 정도지 아주 활기찬(exciting) 해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의 요인은 외부보다는 국내소비가 견실하게 증가하는데서 찾아야 합니다.
▦ 강 원장= 다음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난해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 두 차례 추경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추경 편성효과의 절반 정도는 올해 나타날 것입니다. GDP 성장률을 0.5%정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또 정부 예산안을 바탕으로 올 상반기까지는 재정지출을 통한 내수경기 진작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금리정책과 관련해서는 지난해에는 미국처럼 좀 더 일찍 금리를 인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GDP 성장률을 기준으로 지난해 3ㆍ4분기를 저점으로 나아지고 있으니까 새해에는 금리조정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국내경기상황을 봐가면서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소위 건설경기에 효과가 있는 반면에 금리정책은 투자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것의 효과가 보다 광범위(general)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재정정책보다 금리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조 교수= 지난해 재정정책에서도 실기(失機)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질적인 예산집행과정을 보면 팽창이라기보다 긴축이 맞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거시경제정책과 관련해 올해 1ㆍ4분기 저점을 완전히 치고 올라간다고 보면 시간차(Lag)가 있는 재정정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리정책은 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았고 인플레 압력도 크지 않은데다 이자보상비율이 1이 넘지 않는 기업들이 많은 상황에서 구조조정 완결 때까지 저금리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환율이 변수가 될 것입니다. 경제가 이미 개방적이기 때문에 환율과 금리을 같이 봐야하는데 올해 환율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두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해 말 환율을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금리가 착란작용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 강 원장= 환율은 시장수급상황에 맡기되 완급조절(smoothing operation)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엔화 움직임에 조심해야 합니다.
일본이 엔화 절하를 돌파구로 삼고 미국이 이것을 용인할 경우 엔화는 절하되는데 원화 환율을 낮출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엔화움직임을 주시하며 정책을 펴야 할 것입니다.
▦ 조 교수= 맞습니다. 일본이 엔화 약세 정책을 거시정책의 탈출구로 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140엔까지 올라가도록 미국이 용납해주느냐가 관건입니다. 일본 내부적으로는 엔화 절하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달러가 계속 들어온다고 볼 때 단지 수급에만 맡길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면으로 봐서도 금리는 저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강 원장= 대외경제환경 변화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조 교수= 대외경제환경의 흐름을 짚어보면 아시아 경제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던 미국의 아시아 지역 안보협조체제가 서서히 퇴조해 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할 수 있습니다.
특히 9ㆍ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은 전 세계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기존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안보협조체제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그동안 무대에서 사라졌던 나라들이 앞으로 빠른 속도로 세계경제 무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유럽지역의 단일통화체제와 북중미 지역의 나프타(NAFTA)체제가 미국중심으로 확대되는 등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가지를 종합적으로 본다면 지역간 협력이 강화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시아지역 협력을 위해 우리나라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환율정책과 관련된 지역간의 공조 등에도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 강 원장= 한국경제의 미래는 일본ㆍ중국ㆍ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우리의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특징을 갖고 있는 대국들이기 때문에 이 사이에서 한국이 각각의 이점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ㆍ일ㆍ중국 간에 역사적인 여러 가지 문제나 안보상의 헤게모니 등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비경제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이나 나프타 같은 형태의 지역경제협력시스템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서로 도움이 된다면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역사ㆍ안보적인 문제는 일단 잊어버리고 협력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로 하고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빨리 타결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남북경제협력 문제에 대해 국민간의 시각차도 있고 상호주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북한을 관통하는 정보통신망과 물류시스템이 갖춰지는 것과 이런 시스템이 없는 것은 우리경제 역할에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 강 원장= 마지막으로 구조조정과 관련해 말해보겠습니다. 새해에는 양대 선거가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금융부문이나 공공기관의 민영화, 부실 대기업 처리 등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노조와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런 분야에서 선거 등을 우려해 적당히 달래기식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습니다.
김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구조조정 과제를 성실히 마무리 짓겠다는 자세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해 경제를 운용한다면 국민이나 외국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 교수= 한 나라의 구조조정 속도는 정치ㆍ사회적으로 이것을 수용하는 속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정치 지도자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상으로 정치사회적인 불안을 초래하며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구조조정은 다음 정권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정책 방향을 조기 가시화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강 원장= 현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 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노조 반발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번 정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다음 정권으로 그대로 넘어간다는 인식만 분명히 한다면 문제없을 것입니다.
정리=최윤석기자
이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