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사우디 '왕족' 특혜 버리고 대출금 3만달러로 회사 창업

■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 (리즈 칸 지음, 김영사 펴냄)

25년 월가 주무른 '투자의 신'… 하루 17시간 일하고 2개국 방문

열정·실천의 온도로 기적 만들어 "당신 인생의 온도는 몇도입니까"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국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때 백마탄 왕자처럼 현대차 등 자금난에 빠진 대기업에 수억달러를 투자해 한국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앞서 90년에는 위기에 빠진 시티그룹을 구제하며 최대 개인주주로 떠오르며 월가를 휘저었다. 2004년 포브스는 그를 세계 4위 부호로 선정했다.

왈리드 하면 한국인에게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일게다. 세습 군주제 국가에서 '왕자'라는 은 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집안의 든든한 연줄과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인물 등 등. 하지만 허름한 집 창고에서 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처럼 돈이 없어 컨테이너 박스에 첫 사무실을 차렸다면 믿길까. 그것도 돈이 없어 시티은행에서 빌린 3만달러가 전부였다면.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는 알 왈리드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 비서구인으로 월스트리트를 장악한 탁월한 비즈니스 노하우와 전략, 투자의 원칙, 성공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담긴 알 왈리드의 유일한 공식 전기다. 저자는 알 왈리드는 왕자라는 배경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왈리드는 최근 또 다시 엄청난(?) 일을 터뜨렸다. 터번을 걸친 이 60대 남성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전재산인 320억 달러(36조5,472억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담담히 발표했다. 자수성가형 인물이었기에 이런 담대한 포부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 왈리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출신이지만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레바논에서 자랐다. 어머니 편에 서면서 다른 사우디왕자들과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했고, 수시로 가출과 퇴학을 반복하며 반항아가 됐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 멘로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뉴욕 시러큐스대학에서 사회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우디로 귀국한 그는 대출금 3만 달러를 가지고 컨테이너 건물에서 회사를 창업했다. 왕족으로서 특혜를 받으며 살기보다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후 건설 수주와 부동산 투자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은 알 왈리드는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종잣돈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와 사업에 나서게 된다. 창업 당시 씨티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그는 1990년 위기에 빠진 씨티그룹을 구제하면서 최대 개인 주주가 됐다. 이후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프 지분 5%를 확보해 미디어 분야의 큰손으로 떠올랐고, 애플, 모토로라, 트위터 등 IT기업에도 선도적으로 투자해 거액을 벌어들이며 미디어와 문화산업 투자를 통해 돈과 영향력 모두를 거머쥐었다. 알 왈리드는 지금도 하루에 열일곱 시간을 일하고, 새벽 5시까지 공부하고, 일주일에 다섯 권 이상의 책을 일고, 하루에 두 개 국가를 방문한다.


세계적 투자기업인 킹덤홀딩스(KHC)의 회장인 그는 서구와 중동의 두 세계가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고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꾼 21세기 가장 성공한 사업가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중동 출신임에도 오일머니 없이 사업을 시작해 월스트리트를 장악하며 지난 25년간 매년 25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린 투자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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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그를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이라고 명명했고, 포브스는 '빌 게이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평가했다. 걸프비즈니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랍인 1위'로 지난 8년간 연속 선정했다.

씨티그룹, 펩시콜라, 애플, 트위터, 타임워너, 포시즌호텔,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이며, 그의 투자회사 KHC는 금융, 호텔, 언론, IT, 농업, 식품 등 우리가 보고 듣는 거의 모든 다국적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저자는 알 왈리드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억만장자이면서 전 재산 기부를 약속하고 실행하는 자선사업가라고 강조한다.

왈리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창업 초기 사업 파트너로 한국 기업의 도움을 받았던 알 왈리드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현대자동차에 1억 달러, 대우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1999년에는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경제협력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알 왈리드의 성공 전략을 보여준다. △철저히 연구하고 때를 기다려라 △괜찮은 선택이 아닌 훌륭한 선택을 하라 △결정했으면 신속하게 협상하라 △신뢰하되 검증하라 △문제가 기회가 될 수 있다 △가장 작은 것까지 놓치지 마라 △도전이 기회를 만들고 기회가 기적을 만든다

3만 달러의 대출금으로 시작해 세계 4위의 부호가 됐고, 컨테이너에서 출발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높이 1㎞를 넘는 킹덤타워의 주인이 된 알 왈리드가 가지고 있었던 투자전략이다.

사업을 진행하며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그지만 권위적인 귀족은 아니다. 알 왈리드는 자유분방하고 서구적이며 남성우월주의인 아랍 문화권에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KHC 여직원들은 히잡을 두르지 않고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한껏 멋을 뽐내며 근무한다.

알 왈리드는 묻는다. "물은 100도씨에서 끓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꿈과 열정의 온도는 몇 도입니까. 100도에 도달할 때, 불가능은 가능이 됩니다. 99도에 머무르느냐, 100도에 도달하느냐. 단 1도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2만2,000원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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