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브루나이에서 공개된 ARF 의장성명에는 "대북제재안이 담긴 유엔안보리 결의안 준수와 한반도 비핵화 촉구" 등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성명은 ARF 회의 직후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북핵과 관련한 의견 조율로 4시간가량 발표가 늦춰지는 등 진통을 겪었다.
이번 의장 성명 발표로 남북 양측이 지난 3일간 벌인 물밑 외교전의 승패가 명확해졌다. 우리 측은 의장 성명에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안건을 담기 위해 꾸준히 공을 들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6월30일 브루나이에 도착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 등 6자회담 당사국 외교장관을 잇따라 만나며 대북 압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특히 중국 측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전이 치열했다는 평가다. 윤 장관은 6월27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브루나이에 도착하기까지 왕 장관과 사흘간 함께하며 대중 외교에 공을 들였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또한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하기 위한 한미중일의 4각 공조가 완성됐다"고 평가하는 등 우리 측에 지원사격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이번 ARF 의장성명으로 북한은 더욱 코너에 몰리게 됐다. 북한의 박의춘 외무상은 이날 ARF 회의장에서 "한반도 위기의 원인은 미국"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여론몰이에 힘썼지만 관련국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최명남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ARF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미국의 핵무기에 맞서 우리는 정당방위의 자위적인 견지에서 핵무기를 가졌다"며 "미국의 가중되는 핵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강경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의장성명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ARF 의장성명이 구속력은 없지만 6자회담 당사국이 모두 참가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 받는 압박은 상당할 것"이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대화 재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시키는 계기가 된 듯하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이날 중국과 러시아에 각각 외교단을 파견하며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의 대미 외교와 핵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러시아 방문길에 나섰으며 김성남 외무성 부부장 또한 같은 날 방중길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오는 27일(정전협정일)까지 이러한 외교전에 총력을 가할 것으로 보고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