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0일] <1220> 석유 무기화


1973년 10월20일 새벽, 워싱턴에 비상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5개 산유국들이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전면적인 관계단절을 주장한 이라크와 철저한 친미정책을 구사하던 팔레비의 이란을 제외한 전아랍권이 석유 금수에 똘똘 뭉친 이유는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10월6일)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스라엘이 전세를 역전시킨 게 미국의 무기 원조이라고 판단,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워싱턴은 크게 당황했다. 아랍 산유국들이 감산을 결의(10월16일)했을 때 은밀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촉한 결과 더 이상의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친미 온건국인 사우디는 당초 대미 금수에 반대했으나 미국의 무기공급이 예상보다 훨씬 대규모라는 점에 격분, 강경론에 합세했다. 다급해진 미국이 4차 중동전 마무리에 나서 전쟁은 개전 17일 만인 23일 휴전에 들어갔다. 중동의 포성은 멎었지만 세계 각국은 한파를 맞았다. 석유무기화 조치가 풀린 이듬해 3월까지 국제유가는 4배 오르며 세계 경제에 1차 석유파동이라는 짐을 안겼다. 유가 상승은 산유국들에 돈을 안겨줬을까. 그렇지 않다. 유가 상승분에 의한 초과 수입은 달러화 약세로 상쇄돼버렸다. 그렇다면 누가 이득을 취했을까. 최근 출간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화폐전쟁’ 등에 따라 전쟁 발발과 석유 무기화마저 서방자본에 의해 치밀하게 기획된 음모였으며 유가 상승에 따른 이득은 석유메이저가 독식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랍산유국들이 조건으로 내걸었던 중동평화와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유가도 여전히 불안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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