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달러 파수꾼 한국까지 "팔자" 나서나 '촉각'

보유달러 90%이상 美재무채권등 투자<br>정부, 채권 불안·환율 하락 딜레마속 대책 부심

23일 아침 한국은행 8층 총재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승 총재는 출근 즉시 이사들을 소집했다. ‘BOK 쇼크’가 국제 금융시장을 놀라게 한 이상으로 한국은행은 더욱 놀라워했다. 자신들의 보고서가 이렇게 큰 파문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그들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회의 직후 나온 보도 참고자료는 “최근 해외통신들이 보도한 한국은행의 미 달러화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는 해명성 문구로 가득했다. 해명의 효력이 미세하나마 발휘된 것일까. 이날 개장과 함께 달러당 1,000원 아래로 급락세를 이어가던 원화는 전날보다 2원30전 내린 1,003원80전으로 장을 마감했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의 말처럼 “병 주고 약 주는” 형국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이 놀란 이유는 현재 각국 통화의 역학관계를 들여다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국제 외환시장의 딜러들에게 BOK의 보고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게 만들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달러를 처분하게 만든 결정적인 구실로 작용했다. 달러는 연초 강세를 보여왔다. 미국의 금리인상에다 미국 경제전망이 유럽보다 좋은 점,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 무역적자가 감소할 것이라고 낙관한 점 등이 두루 작용했다. 하지만 차츰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제 펀더멘털상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이유는 거의 없었던 것. 한국은행이 달러화의 내면에 담긴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한 것일까. IMF 사태 당시 달러가 한푼도 없었던 한국. 7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2,000억달러를 보유하며 일본ㆍ중국ㆍ대만에 이어 세계 4대 외환보유국이 됐다. 보유 달러의 90%를 미국 달러자산에 투자하고 대부분을 미국 재무채권(TB)에 투자해온 탓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달러화 파수꾼’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로화 등으로 보유 외환을 분산해온 중국 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드디어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한국은행이 국회 보고용 자료에서 호주달러ㆍ캐나다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고 타전했다. 덕분에 호주달러와 캐나다달러는 각각 1년래, 1개월래 최고를 기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이 달러 비중축소에 나설 경우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는 밴드왜건(band wagon)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우려를 보인 것이다. 무엇보다 총 3조8,000억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중앙은행들에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달러를 팔아치우라”는 ‘웨이크업콜’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정부의 움직임은 한층 부산해졌다. ‘달러화 폭락의 주범’이라는 뜻하지 않은 오인(誤認)을 받게 된 것도 문제이지만 주가 1,000포인트를 바라보며 승승장구하던 참에 날벼락을 맞은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서둘러 해명자료를 배포한 데 이어 이날 저녁 예정에 없이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었다. 국채 발행계획을 재조정하고 발권력 동원을 검토하는 등 사용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하락을 막을 실탄이 없다. 정부는 외환시장안정용 국고채(환시채)로 지난 1월에 5조원, 2월에 7조원을 발행했지만 2조7,000억원은 차환용이다. 여기에 지난달 채권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금리안정을 위해 3월 국채 발행물량을 3조원 안팎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때문에 환시채 발행을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환율을 잡자니 채권시장이 문제이고 금리를 떨어뜨리자니 환율이 하락하는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다. 결국 상황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수순으로 점차 움직이고 있다. 1,000포인트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이르고 있는 순간 발권력은 대규모로 그리고 빠르게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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