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6월 4일] 지미 카터와 폴 볼커

제임스 얼 카터 미국 전 대통령(1977~1981년)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일 벌레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밤 늦도록 백악관 집무실을 떠나지 않고 정책구상에 몰두했다. 이런 노력에도 카터 행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신통치 않았다. 이란 인질 사태의 장기화로 리더십에 발목이 잡혔고 경기가 곤두박질쳐도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지난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미국은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카터 행정부는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에 참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인기가 낮았지만 퇴임 후 오히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활발한 인권활동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중동 분쟁과 북핵 문제 등 국제적 분쟁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퇴임 후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비단 인권과 평화라는 키워드에만 있지 않다. 경제난에 직면했음에도 폴 볼커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기용한 결단력과 소신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카터 참모들은 강력한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볼커의 FRB 의장 지명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가 인플레이션 억제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기에 이듬해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게 참모들의 주장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1979년 볼커를 FRB 의장으로 임명했다. 폴커는 기준금리를 무려 15%까지 올렸다. 카터 전 대통령이 물러난 1981년 인플레이션은 4%로 떨어졌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 경제의 화려한 부활은 감세 정책 등 공급 정책 중심인 ‘레이건노믹스’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재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가 안정의 기반을 다진 덕분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새 경제팀과 한국은행이 불협화음을 드러낸 바 있다. MB경제팀의 성장 우선 논리가 틀린 것만은 아니고 중앙은행이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것도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한은이 성장과 인플레이션 간의 균형감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경제 정책의 방향이 인플레이션부터 잡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을 보면 한은의 판단이 옳았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한은이 정권 출범 직후 긴축기조를 포기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지금쯤 금리인상 압력에 직면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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