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망각 속의 기념일


대한민국 국민은 기억할 게 참 많다. 어린이날·어버이날과 같은 국가지정 공식기념일도 챙겨야 하지만 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빼빼로데이처럼 연인과 청소년들이 잊어서는 안 될 날도 있다. 국적 없는 기념일이라는 비판은 잠시. 이제는 만에 하나 날짜를 까먹어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들볶일 각오를 해야 하는 시대다.


△2월14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젊은이뿐 아니라 40대 이상 중장년도 '발렌타인데이'라고 답하기 십상이다. 온 거리가 시끌벅적하니 그럴밖에. 하지만 우리가 이날을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104년 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대한민국과 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처단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일본이 사형선고를 내린 게 이날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선 죽은 뒤에도 독립운동을 하겠다던 안 의사. 하지만 후손들은 연인에게 줄 꽃다발과 초콜릿 준비하기에 바빠 고국에 묻어달라던 그의 유골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관심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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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기념일이 어디 이뿐이랴. 일제에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겼던 을사늑약 체결일(11월17일)은 다른 기념일에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은 2007년 1월14일 발생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지만 이제는 연인끼리 생일이나 기념일을 적은 수첩을 선물하는 '다이어리데이'에 묻혔다. 일부 약삭빠른 기업들이 마케팅을 위해 매달 14일을 '○○데이'로 바꾼 탓이다.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사회가 물질화·파편화되면서 정작 과거를 되새기고 교훈을 찾으려는 노력은 점차 사라지고 향락만 기억하는 기념일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바꿔보자. 다행히 최근 2월14일을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날로 하자는 움직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고 한다. 오는 발렌타인데이 때 연인끼리 꽃다발이나 초콜릿과 함께 안중근 의사에 관한 책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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