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터뷰] 김준호 미리내운동본부 대표

한 그릇 먹고 두 그릇 값… '미리내'는 기부 참 쉽죠

미리 값 지불하는 나눔운동

동네가게 중심 빠르게 늘어

1년5개월만에 전국 300호점

김준호(왼쪽) 미리내운동본부 대표가 '미리내' 캐릭터 모자를 쓴 점주와 함께 미리내가게 오픈식 후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미리내운동본부

'미리내가게'에서 짜장면 두 그릇 값을 내고 한 그릇을 먹으면 나머지 한 그릇은 궁한 뒷사람에게 돌아간다. 이름 모를 이웃을 위해 미리 값을 지불하는 나눔운동은 전국 동네가게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나눔에 동참한 미리내가게가 1호점 문을 연 지 1년 5개월 만인 지난달 말 300호점을 넘어섰다.

김준호(42·사진) 미리내운동본부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눔은 쉽게,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다"며 "미리내가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물론 우리 이웃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미리내가게 팻말을 내붙인 음식점을 방문한다면 불우한 주민이나 독거노인들이 식사를 한 후 가게 한쪽 벽에 앞서 값을 치러준 기부자에게 감사 메시지를 붙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포항 커피점에서는 지갑을 놓고 와 우선 미리내 기부를 이용한 후 재방문해 커피 여러 잔을 다시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궁핍한 사람들만 도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오해도 많았다"며 "그들을 위한 기부는 물론 모자란 사람 누구에게나 나눔을 베풀고 자신도 혜택을 받자는 게 미리내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로 값을 미리 낸다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김 대표는 3년 전 소프트웨어(SW) 벤처 기브네트웍스를 세워 휴대폰으로 기부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기부톡'을 내놓았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궁리 끝에 떠오른 것은 '맡겨놓은 커피(Suspended Coffee)' 같은 해외 기부운동과 품앗이·계·두레 같은 전통적인 나눔문화의 결합이었다. 김 대표는 "상공인이 중심이 되고 신뢰를 닦을 수 있는 마을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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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개발 분야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경남 산청 지역의 한 원두커피점 점주를 설득해 지난해 5월 첫 미리내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누가 대신 내주겠냐는 의문과 회의도 많았지만 기부자들과 가게 신청은 빠르게 늘어났다. 올해 8월 한 달에만 미리내가게 100여곳이 생겼다. 기부 메시지 인증샷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문화도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현재 술집 및 유흥업소를 뺀 다양한 업종에 미리내가게가 있다.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점주가 중고폰을 받아 수리한 후 불우 청소년 50여명에게 나눠주고 기부한 중고폰을 팔아 요금도 내주고 있다. 유기견에게 사료 및 용품을 남겨놓는 애견센터도 있다.

김 대표는 "직원들 월급 끝전을 모아 그 기금으로 미리내 쿠폰을 구매해 불우단체에 전달하거나 사내 점심쿠폰을 현금으로 바꿔 기부하는 기업들도 많다"며 "일부러 돕기 위해 행동하기보다 자신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나눔실천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기부톡 SW기업을 창업동료에게 맡기고 현재 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 대표는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동네 사장님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닌다. 찬바람이 불면 나눔에 관심이 더 많아지는 만큼 연말까지 500곳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 용산에 낸 사무실 경비를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는 그는 "가게 오픈에 필요한 물품비용을 미리내가게 점주들이 십시일반 도와줘 그나마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기부에 대한 관심과 습관은 경기 의정부 지역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봉직하고 정년퇴임한 모친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그는 "나눔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있다면 조금 짬을 내서 동네 미리내가게에 들러 작은 정성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경험을 해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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